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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

4차 남아공 선교센터 방문 - 제네덴달

2026년 2월 4일 · 김치훈


이번 4차 남아공 방문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이곳 "제네덴달"에 있습니다. 

제네델달 은혜의골자기.jpg

모라비안 공동체가 남아공으로 첫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남아공에 온 첫번째 선교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1737년에 죠지 쉬미트 라는 선교사가 방문하고, 

7년을 사역한 뒤에 쫓겨납니다. 

선교가 끝난 줄 알았지만, 

50년 뒤에 다시 3명의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그곳에 그 씨가 발아해서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교사도 없고, 교회건물도 없었지만,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순종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제네덴달 파이프오르간.jpg

그렇게 선교의 문이 열리고, 독일의 선교사들이 많은 기술들을 가르쳐주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서 남아공 최초의 직업훈련학교가 제네덴달에 세워지게 됩니다. 

음악도 가르쳤습니다. 이미 그 당시에 파이프오르간도 남아공 최초로 제네덴달에 존재했습니다. 

그 오르간이 지금도 보존되어있고 연주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선교사들은 많은 기술들을 가르쳤고 장비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칼은 수출까지 될 정도로 탁월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악단활동이 이미 이루어지고, 많은 음악가들도 배출되었습니다. 

 

후에 영국의 선교사들은 교육을 시켜주었고, 멀리 이스트케이프에서도 이곳에 유학을 올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케이프의 스텔린보쉬가 가장 번화가 중에 하나이지만, 이 당시에는 스텔린보쉬에는 200명 

그리고 제네덴달에는 3000명이 살 정도로 이곳이 번화가였고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곳들이 많이 발전하고 복을 받는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네덴달.jpg

하지만, 놀랍게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교회를 세우고 남아공 최초로 교량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만든 뒤로 오히려 성도들을 줄었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로 전락했고, 공동체만 존재할 뿐입니다. 

왜그런가 했더니. 복음으로 시작했지만 많은 기술과 발전으로 세속화의 물결을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와 교량을 건축한 것은 어찌보면 진실한 신앙보다는 세속화된 신앙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모라비안 공동체 영적 지도자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했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강조했습니다. 이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공동체를 떠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영적 지도자들은 많은 세속적인 사람들보다도 한 사람의 거룩하고 신실한 영혼을 세우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유지하고 전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바로 모라비안 공동체와 같이 성령공동체이고, 선교공동체이고, 훈련공동체이고 신앙전수의 공동체입니다. 

이 흐름을 따라서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