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준선교사님과의 교재
주일에 은총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 이후에 곧 바로 희망봉을 갔기 때문에 주일에는 충분히 교제하지 못했다.
우리는 주일밤부터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함께 식사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같았고, 화요일 오후에 댁에 방문해서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월요일 저녁에 스위치온 다이어트가 1차로 무너졌다가 다시 시작한 상태로 문선교사님 댁을 방문했다. 3-4시간 정도 교제를 했는데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신 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집을 돌아왔다. 사실상 우리가 너무 피곤했다.
선교사님은 7월 중순에 한국으로 들어가시는데, 작년부터 파송교회가 생겼다고 하셨는데 그 교회가 어딘지 몰랐는데 수원에 있는 베들레헴교회였다. 그 교회는 나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교회여서 조금 알고 있었는데 참, 세상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든다. 베들레헴교회는 오산 우리교회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깝다. 그래서 숙소는 동탄 쪽으로 구했다고 하시고, 베들레헴교회가 50주년이 되면서 선교대회를 하는 것이었다. 선교대회를 하니, 그 동안 파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을 다 초대해서 일주일 정도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참 귀한 사역이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교회도 언젠가 그런 선교대회를 열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선교대회하면 참 멋진 기획을 해볼 수 있을 것같긴하다. 베들레헴교회는 내가 전도사때 사역했던 와~우리교회와 형제교회다. 그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 안경렬 목사님이신데 그 분이 와~우리교회를 개척하시고 그 뒤로 베들레헴교회도 개척하셔서 두 교회를 모두 사역하고 계셨다. 그러던 중에 와~우리교회는 수석장로님을 신학을 시켜서 후임목사로 세우시고, 안경렬목사님은 베들레헴교회만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와!~우리교회는 후에 박만규목사님이 부임해오셨고, 나를 비롯해서 새로운 사역자들이 함께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안경렬목사님은 베들레헴교회로 가시면서, 그곳에 더 부흥할 것을 예상하셨던 것일까? 어찌된 것인지를 모르겠다. 와~우리교회는 10년 정도 그 장로님이 사역하면서는 너무 장년중심이고, 말씀이 약함으로 인해서 힘들어지던 차에 박문규목사님이 오시면서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3천명에 육박하는 대형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베들레헴교회도, 안경렬목사님 이후로 오신 담임목사님이 사역을 잘 하셔서 부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 디자인을 멋지게 한 것같은데 어찌되었든 두 교회 모두 잘 부흥한 귀한 케이스다.
그리고 베들레헴교회 담임목사님과 목포 사랑의 교회에서 남아공 선교사로 파송한 박성원선교사님과 박사학위 동기지간이다. 남아공에도 교회를 박성원목사님을 통해서 교회를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남아공 첫 방문때 베들레헴교회에서 박성원선교사님을 통해서 세운 교회를 방문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박성원선교사님과도 문성준선교사님이 아시고 해서 베들레헴교회에서 파송교회가 되어주는 연결이 되어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와~우리교회는 중국에 30개의 교회를 개척했었는데, 한 가정이 한 교회를 세우는 운동을 했었다. 그래서 30개의 가정이 30개의 교회를 세운 것이다.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 선교사가 파송되어도 평생 교회 하나도 못 세우는 선교사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 중국에 30개의 교회를 세우다니. 당시 와~우리교회 목사님의 은사가 그런 부분에 특화되어있었다. 당시에는 300만원, 크게 지으면 700만원이면 교회를 하나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웠으니 교회는 얼마나 사모하고 기도를 하겠는가? 교회는 잘 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늘 기도하고 사모하게 되고, 중국선교에 동참하게 되는 은혜가 있었다. 당시 전도사로 있을 때, 그렇게 세워졌던 교회들을 차례로 방문했었는데 교회 건물은 지어져있지만, 역시 목회자의 부족으로 인해서 어려운 교회들이 많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크게 세운 교회들이 더 어려움이 많은 경우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선교의 현실을 보게 되었는데 30개의 교회를 세웠지만, 그 교회중에서 제대로 운영되는 교회는 안타깝게도 거의 없었다. 다들 어려움이 시달리고 예배도 겨우 드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그 지역에 교회라는 건물이 있다는 것으로 의미를 둔다면 그것이 의미인 셈이다. 역시 선교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건물은 그 다음이다. 물론 건물이 있어야 공동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성도들이 예배하고 훈련할 수 있는 거점이 되는 장점이 있지만 건물이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꼭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선교를 했기 때문에 베들레헴교회에서도 그런 방식을 그대로 전수받아서 선교를 하고 있는 것같다. 요즘은 한 가정이 한 교회를 세우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 한 교구가 한 선교사님을 담당하는 구조로되어있는 것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한 선교사님에게 후원하는 금액이 크지는 않은 것같다. 그래서 한 교구에서 선교헌금을 하고, 그 헌금으로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해서 교구가 또 생기면 그교구가 한 선교사님을 또 선정해서 후원하는 구조인 셈이다. 남아공에도 시골에는 3000만원이면 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 5000만원이면 좀 규모가 있고, 다음세대 훈련할 수 있는 공간, 학교 공간도 만들 수 있고, 그 정도면 한 가정이 헌신해도 할 수 있는 규모이기도 한데, 여전히 그렇게 하는 가정들도 있는 것같다. 박성원선교사님을 통해서 세운 교회도 교회에서 세웠다기 보다는 한 장로님의 가정에서 헌신해서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되었든지 세상은 참 좁다. 이렇게 서로 아는 관계안에서 일이 풀어진다. 문선교사님은 8월 중순까지 한국에 계신다. 한 달 반정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시고, 우리교회는 8월 첫째주 주일에 오셔서 섬기시기로 하셨다. 그렇게 한국에서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같다. 기회가 되신다면 우리교회에서 힐링룸사역도 경험해보시고, 성령사역을 교회안에 아름답게 적용하는 것을 보셔도 좋을 것같긴 하다.
난 선교사님이 한국의 한 교회에 청빙을 받아서 오시면 좋겠다는 감동을 전달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님께서 두 분이 세우셨던 마당교회가 이제는 현지 사역자들에게 넘겨주고 본인들은 나와야 한다는 감동을 받고 계시고, 이제 문선교사님도 마당교회 섬기는 것이 조금 지치신 부분도 있는 것같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고 하시는데 그런 것들이 일종의 사인이 되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한국교회 목회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생각하면 차라리 선교현장에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계속 선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제 2마당교회를 세울까 하는 생각들 많은 생각들이 있는 것같다. 그 와중에 자꾸 나에게 남아공에 선교를 나와서 같이 제2마당교회를 세우자고 강권하시듯 하셔서 당황스럽긴 했다. 선교를 나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선교를 나와는 일을 가장 막는 것은 첫번째가 재정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이사하는 일같지 않다. 재정이 많이 깨진다. 집을 초반에 사지 않아도, 이동하면 뭐하면 비자하며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료를 많이 치루게 되고,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 가정이 어느 정도 재력이 있으면 시도를 해보겠지만 거의 서민에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 일단 재정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회복을 주시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교회도 그런 여력은 없고.
앞으로 사역은 선교에 더욱 주안점을 주게 되겠지만, 일단은 우리 가정이 선교현장에 가서 선교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하셔서 어떤 방식으로 선교를 풀어내실지는 더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이제까지 받아온 감동을 종합하면 우리는 해외전도집회를 여는 방식의 선교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선교가 풀어져갈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