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월 월삭, 제네덴달
아브월 월삭이다. 아버지의 선물을 받는 달,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속적인 불순종으로 결국 징계를 받게 된 달이기도 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의 선물에 감사하기는 커녕, 원망하고 배신하고 뒤를 돌았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랑도 믿지 않았고, 아버지의 뜻에도 관심이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보여주시면서, 이제 이곳에서 너희가 제사장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야 하고, 짠 하고 보여주었는데, 아버지를 욕하고, 원망하면서 의절하고 떠나는 자식들이라니...여기까지 오면서도 그렇게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것을 참아주고 참아주었고, 약속의 땅을 보면, 마음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고, 그 땅앞까지 데려왔는데 그 앞에서 그들은 지금껏 해왔던 모든 거역과 불순종을 더한 것보다 더한 반역을 행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도 그 패역한 자녀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심히 해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려고 하셨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로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으로했다. 그들은 40년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어야 했다. 은혜는 2세대를 버리지 않고, 2세대를 광야에서 믿음의 훈련을 시킨 다음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순종해왔다면, 아브월은 하나님의 나라의 약속이 풀어지고 아버지의 선물을 누리고 주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누리는 절기가 된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는 약속하셨던 아버지의 선물이 임하게 되고, 불순종한 자녀들에게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알까? 하나님은 순종 잘 해오던 자녀들을 갑자기 징계를 내리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앞에서 지속적으로 불순종하고, 주 앞에 나아오지 않았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신다. 그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들이 있었겠지만, 그 회개의 기회도 끝난 것이다. 그들에게는 징계가 임할 것이다. 징계도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녀가 아닌 이들에게는 징계도 오지 않고, 그들은 계속해서 그 죄를 짓고 진노를 더욱 쌓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징계가 아니고 심판이 임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아브월에 공동체의 많은 지체들이 아버지의 선물을 누리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수고하고 애쓰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온 지체들에게 믿음의 상급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아브월에 제네덴달을 방문하기로 했다. 제네덴달은 우리의 인도하심의 유업가운데 하나다. 아주사거리 부흥운동의 성령부흥운동의 유업과 또 하나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신앙전수 교육선교의 유업이다. 그 중에 모라비안 교도들의 유업이 제네덴달에 남아있다. 그곳은 모라비안 교도가 남아공에 첫 선교를 왔던 곳이다. 스미스 선교사님을 통해서 제네덴달에 복음이 들어왔고, 그곳은 남아공에 광물혁명이 일어나기 전, 가내수공업시대까지 가장 발전한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신앙의 삶과 그 신앙의 전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큰 교회를 짓거나 세상적인 유명세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아무런 재정도 없이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선교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노동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어주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헛되지 않게 하라, 승리하신 어린양 그리스도를 따르라. 라는 슬로건으로 그들은 진리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세우는데 집중해온 것이다.
우리에게 임한 그 신앙전수의 유업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 방문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는지 우리는 제네덴달을 가는 길에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시기 위해서 주신 무지개. 주님은 무지개를 보시면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억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을 잠재우는 무지개, 아브월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속적인 불순종, 역사를 거듭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일관적으로 불순종하는 그들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시면서 그래도 그들을 향한 심판을 유보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원가지인 유대인들로 불순종할 때 꺽이게 되는 데 이방인인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의 엄위를 두려워해야하겠는가?
아무튼 하나님은 평화의 상징인 무지개를 보여주셨고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네덴달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전에 방문했던 박물관들을 다시 돌아보았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레방아와 곡식타작공장을 보고, 인쇄소를 보게 되었다. 인쇄소가 그곳에서 운영되어서 그곳에서 책을 찍어서 판매했던 곳이기도하다. 당시에 자급자족을 이루기도 했고, 책을 만들고, 칼을 만들어서 경제도 일으키기도 했다. 최초의 교량도 만들기도 했고, 남아공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지금도 보관되어있다. 한 때 웨스트 케이프 다음으로 발전한 도시였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노예해방법이 통과되면서 남아공에 있던 영국의 노예들이 자유를 얻게 되고, 그 해방된 노예들을 차별없이 받아준 곳도 이 제네덴달이었다. 그 당시에 이미 제네덴달은 기독교적인 바른 가치관이 다스리고 있어서 인종차별을 이긴 공동체 였다. 해방된 흑인노예들이 그곳으로 1000여명이 모여들었다.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오게 하셨는지를 알만한 곳이 있었다.
배나무,
스미스선교사님이 그 배나무에서 다음세대와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는 곳이다.
그 분이 이곳에서 성경을 함께 읽고 성경대로 순종하자고 가르쳤던 바로 그 배나무. 그 배나무가 지금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 곳에 잠시 머물렀을 때,
생각이 스쳤다.
스미스선교사님이 젊은 인생을 다 걸고 이 위험한 남아공까지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성경을 매일 읽고, 그 성경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살자고 한 것 아닌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성경을 읽고, 읽게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자고 한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누군가에게는 그 성경을 읽고, 순종하는 것이. 자신의 젊음과 생명을 걸만큼 중요한 일인데, 나에게는 그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실상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아는 것이 생명이고 주님을 전하는 것이 생명을 걸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맞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그래 그는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겼고, 그 생명인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데 그 생명과 인생을 받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편하게 목회를 하는 것인가? 얼마나 소홀하게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인가?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내가 평생해야할 작업이 무엇인가?
성경을 읽고, 그 성경을 가르치고, 그 성경대로 살게 하는 일인데,
또 세상 어디를 가든지 그 것을 행하는 것인데,
제네덴달은 내게 가장 중요한 삶의 지침을 주었다.
성경을 읽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이고 선교이고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