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으로 부르심
군대를 제대한 뒤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할 무렵,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주님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확실한 응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건 없었고 혼자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더 걱정이 되셨는지, “신학을 할 거면 제대로 결정하고 하라”며 단단히 못을 박으셨다. 뭔가 확답을 원하시는 눈치였다.
아버지의 채근에 떠밀리다시피, 나는 3일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신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내심 부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주님의 일 말고는 딱히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공은 정보 및 컴퓨터공학부였지만, 군대 가기 전 2년 동안 적성에 안 맞는 일을 억지로 하며 얼마나 괴로웠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잘할 자신도 없었다. 대학에 와서 선교단체 활동이 삶의 중심이 되다 보니, 주님의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주님께서 나를 종으로 부르지 않으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앞섰다. 제발 주님의 종으로 부르신 게 맞기를 바라며 기도에 매달렸다.
기도 중에 문득 마음속에 스치는 말씀 구절이 있었다. 이사야 41장 9절.
익숙한 10절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분명히 9절이었다.
10절은 워낙 유명하고 내게도 익숙한 구절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지만 9절은 생소했다. 얼른 성경을 펴 확인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이 말이 가슴을 쿵 하고 쳤다. 내가 주님의 종인지 확인하려고 기도했는데, 주님은 너무도 분명하게 “너는 나의 종”이라 말씀하셨다. 게다가 나를 택하셨고,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나는 늘 주님께서 나를 싫어하시고 버리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속에 살아왔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성경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이 말씀이 내 심령 깊숙이 파고들었다. 확실한 응답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고, 주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면 나를 싫어하지 않으신다. 이 진실이 마음에 단단히 박혔다.
기도에서 응답을 받은 뒤, 나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 목포로 내려갔다. 부모님께 “응답을 받았으니 주의 종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도 많이 긴장하셨던 듯했다. 그러시더니 “이왕 주님의 길을 갈 거면 생명을 걸고 가라”며 힘주어 권면하셨고, 그 길을 인정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주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학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자 사학과로 전과를 했다. 영문과를 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영문과에 들어가 영어라도 열심히 배울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역사학도 만만치 않았다. 역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고, 학과 책들이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역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이 공부를 정말 안 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