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데이빗스톤의 시작

2025년 6월 15일 · 김지혜


이사간 곳은 나름대로 좋았다. 병점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은 영구 임대아파트로, 아파트 분위기가 음울했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도 많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도 주의 뜻이 맞겠지라고 나름대로 생각도 했다.(물론 아니었다.)


은진이는 근처의 초등학교로 이사를 했다. 두 군데의 학교 중 한 곳을 정할 수 있었는데, 그냥 별로 알아보지도 않고,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피아노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를 따라서)


그런데 문제는 기쁨이 이하 아이들이었다.

유치원이 거의 무료이다시피한 세종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기쁨이와 희원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한명당 최소 25만원은 돈이 더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돈이 들어가는 것은 가정 형편상 어려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하나? 아님 집에서 아이들 데리고 있었야 하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세 달간 과외하러 다니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경험한 터라..

 

기쁨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 집에서 홈스쿨을 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예배에서인가

남편이 우리가 교회를 개척하고 이년후에 받았던 "데이빗스톤"에 대해서 나누고 함께 기도를 하는데,


내 마음에 아이들의 공동체를 세우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어차피 예수님 믿으면 세상에서는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고 살텐데, 이들이 어렸을때부터 공동체로 함께 있으면 얼마나 힘이 될까, 외롭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경험했던 ivf공동체가 내가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이들의 공동체를 허락해주십시요. 이들이 각기 홀로 있지 않게 해주십시요."


그리고 

같은 예배에 같은 감동을 경미 집사님 역시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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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데이빗 스톤이 시작되었다. 일단 7세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까지 한학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당시만 해도 학교를 안보낼 생각은 없었다.)


함께 시작한 사람은 나, 경미집사님, 세미집사님이었다.

식사는 그 당시에 교회에 있었던 민희자매가 아르바이트로 섬기기로 했다.



엄마들이 섬기는 공동육아같은 형태로..

기쁨, 지유, 유나, 하음, 희원, 가희, 주한이 첫 멤버였다. 당시 주한이는 두살, 가희가 세살이었다. ^^ 


유치부와 영아부의 결합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희와 주한이는 많이 어렸기 때문에

주로 가희와 주한이를 세미집사님이 돌보고, 나머지 아이들을 경미집사님과 내가 돌보았던 거 같다.


나름 말씀 암송도 시키고, 한글공부, 숫자공부도 시키고...여러가지 활동들도 했다. 


당시 경미집사님은 오산에 살고 계셨다. 그리고 임신중이셨다. 그래도 매일 교회에 나오시면서 잘 섬기셨다.  그래서 집사님이 집에 가실때  자주 픽업해드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세종에서 오기 전에 받은 감동이 같이 데이빗스톤을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데이빗스톤은 대체로 잘 이루어지긴 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약간의 어려움과 갈등이 있었다.


부모들의 교육관의 차이로 인한 미묘한 갈등, 아이들끼리의 잦은 싸움


당시 지유와 유나는 거의 매일 싸움을 했다.

한명은 외동이고, 또 한번은 집에서 사랑만 받은 막내여서 그런지 배려심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마음 한편에 어려움이 있었다.

내 아이들이면 우리집 방식대로 매로 징계해서 잡을 텐데, 부모들의 생각이 똑같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다른 부모들은 내 방식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목사님은 아이들을 어릴때부터 매로 징계해야 한다고 설교중에 계속 가르쳤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집에서 그냥 홈스쿨을 했을면 더 편했을텐데라는 생각이 갈수록 더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내 약한 체력도 한 몫을 했다. 한학기가 가까워지자 체력적으로 많이 고갈이 되었다. 


또한 은진이를 잘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의 갈등을 더했다. 

은진이가  전학을 가서..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제대로 돌아봐주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날마다 오전에 데이빗스톤하러 교회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오면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은진이를 잘 돌아봐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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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은진이는 전학가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친구들이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목사님 딸인 것을 알고는 은따 비슷한 것을 했었던 것 같다.

학교 분위기도 많이 거칠었다. 


은진이는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잘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자꾸 은진이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자 은진이는 자신이 어려움을 당한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는 정말 홈스쿨을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데이빗스톤을 일단락이 되었다. 

나는 그게 끝일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