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2017년 우리가 병점으로 올라온 이후부터 2018년까지는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본격적으로 테스트하셨던 시기였던 것 같다.
첫 번째 테스트는 앞서 말했던 사택 문제였다.
두 번째 테스트는 차량 구입과 관련된 일이었다.
2018년 초, 남편이 차량을 구입하라는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제직회에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무도 선뜻 헌신하려 하지 않았다.
그 상황을 보던 한 집사님이 답답했는지, 결국 자기가 다 감당하겠다며
목사님 차와 내 차까지 한꺼번에 사 주셨다. (카니발과 모닝)
그분의 헌신은 정말 귀한 일이었지만, 남편이 보기엔 하나님께서 원하신 방식은 아니었다.
결국 이 일은 공동체가 함께 순종한 게 아니라, 개인적인 헌신으로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새 차를 타게 되면서, 전에 타던 그랜저는 팔았는데, 그 차를 선물해줬던 형제에게는 많이 미안했다.)
남편은 이 테스트도 공동체가 통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테스트는 ‘공주 새부대 제자교회’와 관련된 일이었다.
우리가 병점으로 다시 올라왔지만, 공주에는 여전히 새부대제자교회가 남아 있었고, 거기에는 계속 모이던 청년들도 있었다.
그런데 교회를 유지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은 그걸 보며 병점교회가 공주교회를 도와서 유지하면 어떻겠냐고 제직회에 제안을 했다.
그런데 분위기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도와주자는 의견보다 “그 교회 철거하자”는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목사님이 다시 세종으로 가는 게 싫다면서 철거를 하자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남편은 그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교회를 세우는 교회로 우리 공동체를 훈련시켰는데, 교회를 철거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며 감동을 받는다는 게 정말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철거비만 천만 원.
그 돈이면 교회를 1년은 더 운영할 수 있었다.
“왜 이럴까?” 남편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청년 시절엔 믿음으로 결단하던 사람들이 왜 이제는 감동을 이렇게 다르게 받는걸까?”
그래서 남편은 다시 이야기했다.
교회를 세워야하는 공동체가 교회를 철거하는 쪽으로 감동을 받는게 과연 하나님의 뜻이겠냐고. 다시 기도를 해보라고.
하지만 제직들은 여전히 같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고, 그렇게 철거하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은 결국 철거를 염두에 두고 세종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 교회를 유지하라.”
너무나 선명한 주의 음성 앞에서 제직회의 결정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결정을 했다. 교회 돈 한 푼 쓰지 않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이 교회를 유지하겠다고.
제직회는 남편의 이런 결정을 기분나빠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그렇게 해도 될까?”
사실 그때 우리 형편으로는 방법이 없었다.
사례비에서 150만 원을 빼든지, 아니면 천만 원 정도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기쁨이 임했다. 예전에 개척할 때 교회에 재정을 다 드렸던 그때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오는 기쁨이 있었다.
오히려 좋은 기회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돈 없으면 내가 공장에라도 나가지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아버지의 집’ 선교단체였다.
남편은 새부대제자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 훈련과 재정사역을 하는 ‘아버지의 집’ 사역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집 사역이란, 아브라함의 복을 풀어내는 사역이다.)
그리고 놀랍게도,한 번도 재정이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집’을 통해 새부대제자교회가 유지될 뿐 아니라 '아버지의 집'은 재정이 갈수록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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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나는 남편과 제직회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참 불편했다.
특히나 안수집사들 중 몇 명은 우리가 청년 때부터 훈련시켰고, 결혼까지 함께 준비해줬던 사람들이라 그 변화가 더 뼈아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당시 그들이 이런 ‘테스트’를 감당할 만큼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예민한 테스트를 허락하셨나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 계속 맴돌았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나님이 왜 남편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그들에게 주셨을까?
왜 그렇게 좋았던 관계가 이렇게까지 틀어져야만 했을까?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모든 일이 ‘독립’이라는 주제와 관련이 있었던 거 같다.
그때 교회는 여전히 남편에게 많이 의존되어 있었고, 남편 또한 그 묶임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교회가 어느정도 성장하자 그 묶임을 끊어내고자 하셨던 거 같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갈등의 상황들을 만들어내셨던 거 같다.
즉, 교회와 남편을 분리시키고자 하는 훈련이었던 거 같다.
또한 남편이 그들을 훈련시킨 목적과 그들이 실제로 원했던 관계의 방향이 엇갈려 있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것 같다.
남편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으로 그들을 세우고 싶어 했는데, 그들은 아직 그 헌신까지는 준비가 안 된 채 그저 ‘목사님’이 옆에 계속 있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틈에서 결국 오해와 갈등이 생겼던 것 같다.
이건 단순한 인간관계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가정을 다루시는 더 깊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걸..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