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복음, 능력 있는 하나님 나라
이사한 지 이틀인가, 삼 일 만인가.
세종의 한 거리에서 기쁨이 유치원 때 친구 부모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아마 길을 지나가다가 마주쳤던 것 같다.
세종은 예전 화성에서와는 다르게 이웃들과 친해지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네고 소통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기쁨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그곳 엄마들과는 종종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함께하곤 했었다. 다들 참 좋은 분들이었다.
병점으로 이사가서도 그분들 중에 유독 한 엄마가 종종 생각나곤 했었다. 자신의 친정어머니는 신앙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시는데 정작 자신은 신앙이 없다면서, 나에게 종종 신앙적인 부분들을 묻곤 했던 분이다. 친정어머니가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셨지만 삶에서 온전한 본이 되어주지는 못하셨던 걸까. 무언가 신앙을 갖는 데 마음에 깊은 장애물이 있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아, 이분도 참 하나님을 만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품곤 했었다.
우리는 서로를 누구누구 엄마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나는 늘 '기쁨이 엄마'였다.
그분을 2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길에 서서 너무나 반가워했고, 조만간 다른 엄마들까지 다 같이 모여서 차 한잔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며칠 후, 우리는 약속대로 카페에서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즐거운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는 길, 나를 포함해 세 명 정도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분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진짜 속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고 보니 큰 수술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평소에도 부모님이 신앙이 있음에도 자신의 동생에게 일어난 어떤 큰 문제 때문에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 걸까?" 하는 의문을 늘 품고 살던 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동생의 문제가 도무지 해결되지 않자, 결국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큰 병이 찾아왔고, 그로 인해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는 기가 막힌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물었다.
"아니, 왜 교회를 가지 않고 무당을 불렀어요? 엄마가 예수님 믿으시는데 왜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자 그분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교회에는 능력이 없지 않나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크나큰 충격이 찾아왔다.
'아...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구나. 교회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구나. 귀신을 이길 능력도, 이 세상을 이길 능력도 교회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 순간 내 안에서 뜨거운 열변이 토해져 나오기 시작했다.
"교회가 왜 능력이 없어요! 많은 교회들이 그 능력을 닫아두고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능력이 없을 수가 있겠어요!"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내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기적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강력한 증거들을 그 길거리에서 쏟아내듯 나누기 시작했다.
내 안의 뜨거운 증언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자신도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마음을 열어왔다.
우리는 가던 길을 잠깐 멈추어 섰다. 그분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분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 앞에 완전히 준비된 상태였다. 영접 기도를 따라 고백한 후, 그분은 성령님의 만지심에 마음이 터치되었는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다른 엄마도 깊은 감동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분도 함께 기도를 했는데, 이분은 천주교신자였다.)
눈물을 닦으며 그분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기쁨이 엄마니까 내가 영접을 했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영접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만 해도 나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고백이 담고 있는 영적인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화려한 말이나 지식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풀어지는 것이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교회에 능력이 없어서 무당을 찾았다"는 그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안에서 성령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그것은 사람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능력 없는 교회, 능력을 잃어버린 복음으로 치부되는 이 시대의 현실에 대한 거룩한 의분(義憤)이었다. '왜 교회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고, 성령님에 대해서 쉬쉬하며 숨어 있는가'에 대한 의분이 성령의 감동으로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성령께서는 대화를 통해 그분의 마음을 세밀하게 터치하셨고, 마침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이끄신 것이었다.
그분은 나중에 잘 아는 지인을 통해, 당시 세종에서 나름대로 성령 충만하다고 소문난 교회로 인도되어 신앙생활에 잘 정착하게 되었다.
이 극적인 일을 겪으며 내 마음속에는 깊은 울림과 확신이 찾아왔다.
내가 다시 세종으로 내려오게 된 이유가 단순히 우리 가족의 안늑한 보금자리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길을 잃고 방황하던 이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이 있으셨구나.
이렇게 세종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