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에 접어들 쯤인가?
우리 집 뒷베란다 쪽으로 뭔가가 지어지는 것이 보였다. 원래 아파트이긴 하지만, 우리 집 뒷베란다는 산이 바로 보이고 한편으로는 예쁜 산책로가 있는 곳이었다. 다른 아파트 단지와 연결되는 그 길은 잔디가 예쁘게 깔려 있어서, 마치 오솔길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우리집이 일층이다 보니, 나는 그 공간이 꼭 우리집 정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매일 그 길을 커피 한 잔 들고 산책하곤 했다.
그런데 그 길 너머 한 공터에 갑자기 무슨 큰 건물이 지어지는 게 아닌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건물이 하필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 건물이라는 것이었다.
‘아, 하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왜 저딴 건물이 지어지는 거지?’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남편의 감동이 있었음에도, 아니길 바랐다. 더군다나 집주인이 집을 싸게 내놓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사고 싶었다. (물론 당시에는 계약금 정도도 없는 형편이었으니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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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노아가 태어나기 직전이었을까, 10월 말쯤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사실 지금 오산에 있는 교회 건물은 남편과 같은 시찰회 소속인 C목사님이 지으신 건물이다. 우리가 화재로 교회를 잃고 떠돌아다니고 있을 무렵, 그 목사님은 안식년을 갖기 시작하셨다. 말이 좋아 안식년이지, 사실상 교회를 흩으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목사님은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 중에 성도들은 전혀 동참하지 않았던 듯했다. 워낙 목사님이 수완이 좋다 보니 대출도 끌어 쓰고 학원도 직접 운영하시면서 건물을 유지해 오셨는데, 성도들은 이 건물을 목사님 개인 건물이라 생각했는지 ‘목사님은 부자’라며 교회에 거의 헌신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C 목사님이 이 건물을 지으신 목적은 단 하나,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함께하기로 했던 동역자들도 초반부터 거의 다 떠나버렸고, 성도들의 헌신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몇년동안 교회와 학원을 운영하시다가 안식년을 선언하신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던 비밀이 하나 있었다. 이 목사님은 교회를 지을 때부터, ‘몇 년 정도 사역을 하다가 새부대교회에 이 건물을 넘겨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그분이 건물을 지으면서 그런 감동을 받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그분이 한창 교회를 짓고 계시고, 우리는 병점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교회에서 ‘시찰회 예배’를 몇 번 드린 적이 있었다. 시찰회 예배는 같은 시찰에 속한 목사님들끼리 모여 친목도 다지고 시찰회 안건도 나누는 모임인데, 우리 교회는 위치가 화성이었음에도 ‘서인천노회’에 속해 있었다. (우리가 교회를 개척하고 어느 시찰로 들어갈지 고민할 때, 남편의 은사 목사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C목사님은 교회가 오산이었고. 우리는 행정구역상은 다른 도시이지만, 사실상 차로 15분정도면 가는 거리여서 그분은 인천에서 시찰회 예배하실때는 잘 안 가셨어도, 우리 교회에서 시찰회 예배를 할 때는 참석하셨다. 그런데 그때마다 남편이 다음 세대에 대한 아주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두번이나 전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자신보다 연배가 있으신 목사님들 앞에서는 설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똑같은 내용으로 두 번 설교한다는 건 참 부담스러운 일이지 않겠는가! 첫 번째 설교야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시찰회 예배가 돌아왔을 때 남편은 당연히 다른 설교를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자꾸만 똑같은 설교를 하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런데 그 설교 본문이 엘리 가문에 임한 저주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노회 안에는 제법 큰 문제가 하나 불거져 있었다. 모 목사님의 아들이자 전도사였던 분이 교회 내 성적인 스캔들에 휘말려 방송 뉴스에까지 나오는 등 교계가 시끄러웠던 때였다. 그런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엘리의 아들들(홉니와 비느하스)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종의 자녀들이 사단의 자녀처럼 된 것은 결국 자녀들을 영적으로 교육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설교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가시방석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 설교를 하라고 하셨고, 남편은 결국 부담감을 내려놓고 순종하여 설교를 마쳤다.
오산의 C목사님이 두 번의 시찰회 예배에 모두 참석하셨고, 두 번 다 똑같은 설교를 들으신 것이다. 목사님은 그 설교를 들으며 ‘아, 새부대교회 목사님은 다음 세대에 대한 비전이 정말 확실한 분이시구나’라는 깊은 울림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마음속으로 ‘교회를 다 짓고 얼마간 사역하다가, 결국 이 교회를 새부대교회에 넘겨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인수받는 과정에서 전해들을 이야기이다. )
물론 2019년 당시만 해도 남편은 그분이 그런 생각을 품고 계시는지 꿈에도 몰랐다. 시찰회 때 얼굴을 보는 것 말고는 따로 연락도 안 하는 사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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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10월까지, 장장 10개월 동안 예배처소도 없이 떠돌아다니니 남편의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다. 남편은 점차 ‘이제는 정말 교회를 흩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10월의 어느 주일, 남편은 강단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이야기했다.
“혹시 제가 불쌍해서 억지로 남아계시는 거라면, 이제 다른 교회로 옮기셔도 됩니다. 저는 혼자가 되어도 다시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 설교를 기점으로 실제로 몇 가정은 교회를 떠났다. 나역시 교회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쩌면 아이를 낳고나서 선교를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영어공부를 시키시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주였을까. 갑자기 C목사님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목사님, 제가 지금 병점을 지나가고 있는데... 교회 간판이 바뀌었네요? 어디로 이사 가셨어요?”
“아~ 목사님! 저희 지난 1월에 교회에 불이 나서 건물 철거하고, 지금은 갈 곳이 없어서 계속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하하.”
“목사님! 제가 올해 안식년이라 지금 우리 교회가 텅 비어있어요! 당장 저희 교회로 오세요. 와서 전기세만 내고 그냥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