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첫 사역지(W교회)/결혼식

2025년 3월 19일 · 김지혜


 우리는 2005년 1월 8일, 3년간의 교제 끝에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준비는 참으로 정신없이 이루어졌다. 결혼 한 달 전, 남편이 W교회로 첫 사역을 나가면서 더욱 바빠졌고, 처음 맡은 사역에 대한 긴장과 적응으로 결혼 준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아, 모든 것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대학원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대학 입학처 행정조교 2년 차였기에, 결혼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특히 입시철이 겹쳐 주말에도 바쁘게 일해야 했기에, 신혼살림을 고르러 다닐 시간조차 부족했다. 결국, 집 월세보증금은 양가부모님들이 마련해 주시고, 살림은 내가 모아둔 돈으로 장만했으며, 결혼식 준비는 아버지가 맡아주셨다. 신혼여행과 예물은 시아버님이 준비해주시는 식으로 역할이 나누어 준비했다.

 

 신혼살림을 장만하는 과정도 단순했다. 가구와 가전제품, 이불 등을 하루 만에 저렴한 제품 위주로 골랐고, 그릇은 시댁 사촌형님께서 골라 주시는 대로 샀다(그릇가게를 하고 계셨다.) 지금도 물건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지만, 당시엔 더욱 무관심했다. 엄마와 친구들은 "자취살림 준비하느냐"며 속상해했지만, 우리는 단순히 서로 사랑해서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갈 예정이었기에 물질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사는 계속되었고 많은 짐이 필요 없었기에, 그때의 선택이 오히려 현명했다고 여겨진다. 만약 그때 중고 거래 앱이 있었다면, 더욱 알뜰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남편은 너무 바빠 친구들에게 결혼 소식을 하루 전에야 전했다. 당연히 많은 원성을 들었다. 다행히 대학 시절 함께 활동했던 IVF 친구들에게는 내가 미리 연락을 해두었지만, 겹치지 않는 친구들은 전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이 소심한 성격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일 줄은 몰라 속상했다. 남편도 미안했는지, 전날 밤 기도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님, 아무도 안 와도 괜찮습니다. 주님만 오시면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겉으로는 "그래?" 하고 넘겼지만, 속으로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결혼식 날, 하나님은 정말 많은 사람을 보내주셨다. 아버지는 공직 생활 동안 뿌린 부조를 거둔다며 많은 손님을 초대하셨고, 시댁에서도 많은 친척과 지인들이 참석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친구들도 찾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충만하게 임재하셨다. (너무 은혜로와서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있던 외사촌 언니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

 

 결혼식에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2부 순서에서 경품 뽑기를 했던 일이다. 남편의 사역지인 W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아이디어를 내셨고, 전날 친구와 함께 선물을 포장했는데, 그 친구가 "이건 안 받았으면 좋겠다"던 선물을 본인이 뽑아 난감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두 번째는 막내동생 근식이(바울목사)가 결혼식 내내 울었던 일이다. 남편과 함께 사역하던 W교회 전도사님들이 "신부와 도대체 어떤 관계이길래 저렇게 우는 거지?"라며 궁금해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 형제는 데면데면한 편이었기에, 나조차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의아했다.

 

 그날,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으며 내렸다. 마치 하나님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축가는 IVF 친구들이 정성껏 준비한 '야곱의 축복'이었다. 친구들이 진심을 담아 불러주었기에 더욱 감동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축복하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남편에게 느꼈던 서운함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부족해도 결국 다 도와주시고, 채우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날이었다. 부족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결혼식을 축복해 주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깊이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