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E와의 여정, 하나님이 인도하신 사랑

2025년 4월 1일 · 김지혜


W교회 2년차에 내 삶에서 중요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교회 중등부 2학년 아이 중 키작은 여자 아이가 들어왔다. 그 아이는 외커풀눈이 커다란 귀엽게 생긴, 하지만 웃음기가 없는 아이였다.

 

 한달 정도 교회를 잘 나오다가 안 나와서 상황을 알아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친아빠와는 거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새 엄마와 살고  있었는데 새 엄마와 사이가 안좋았던 거 같다. 그러다 친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되었는데, 새 엄마가 나는 당신하고 E하고 같이는 못 살아라고 하니, 아빠가 중학교 2학년밖에 안된 아이를 고시원에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놓고 기도를 하는 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몇몇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상황을 나누고 기도부탁을 했다. 그런데 기도하신던 분 중에 한분이 당시 혼자 살고 있던 우리 언니(언니가 함께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함께 중등부 교사를 하고 있었다.)와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E의 아버지에게 제안을 했다. 그런데 E의 아버지는 그 제안이 고맙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하셔서 그마음이 바뀌도록 한달 정도 기도를 했다. 그런데 한 달 후 E의 아버지는 결국 고시원 하나를 구해서 아이 혼자 내보냈다.

 

 그런데, 그 고시원이 하필이면 수원역에서도 사창가 근처의 고시원이었다. 아이는 고시원에 간 지 하루만에 학교를 가는 길에 큰 일을 당할 뻔 했다. 동네가 안 좋다보니 그 동네에 사는 어떤 남자가 쫓아와서 해를 끼치려했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교복 단추가 다 뜯겨져나갔고(다행히 안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큰 일이 있을 뻔 했는데, 다행히 근처에 계셨던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도와주셔서 학교를 울면서 간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고, 학교로 불려간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내 제의를 받아들여 아이를 우리에게로 보냈다.

 

 E는 언니가 아닌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E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E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E가 밥을 많이 먹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새 엄마와 살 때 사이가 안 좋다 보니 함께 밥을 먹지 않고, 엄마가 밥 먹고 방에 들어가면 그때서야 나와서 남은 밥을 먹었다고 했다.

 

 더 어릴 때는 (아빠와 엄마는 E가 아주 어릴때 이혼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도 없는 8살~9살때) 엄마도 없는데, 아빠가 집을 나가서 2년 정도 혼자 방치되서 이웃집 할머니가 돌아봐준 적도 있다고 했다.

 

 E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E는 당시까지만 해도 내가 현실에서 보지 못했던 환경속에서 자란 아이였다.

 

 그래서 E에겐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E와 이야기하고 나면 방에 들어와서 E를 위해서 참 많이 울면서 기도했다. E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런데 신기한 것은 E가 집에 오자 ..집에 물질이 끊어지지 않았다.

어디서 돈이 들어오기도 하고, 먹을 것도 계속 들어오고

물질의 공급뿐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친밀함이 강해졌다.  나를 덮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 아이를 한번도 키워보지 않은 이제 28살의 내가, 중학생을 잘 돌보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때로는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학교 다녀와서 공부는 안하고 늘 핸드폰만 보는 E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혼내기도 하고, 훈련시키기도 하고, 잔소리도 많이 했을텐데, 그때는 이미 집에서 많이 상처받고 온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었던 거 같다.

 

 

 그러다가 E가 하루는 친구 만나다고 주말에 나가서 외박을 하고 안들어오는게 아닌가그리고 다음날 들어와서는 서울에서 하는 무슨 코스프레 다녀왔다고 말하는데 기가 막혔다.

 

 그래서 처음으로 E에게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우리가 너의 법적 보호자가 아니니까 이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이러면 너를 돌보는 우리까지 곤란해진다고. 외박은 절대 안되니 다시는 하지 말라고.

 

그런데 반항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E는 다음날 바로 집을 나가 버렸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왜 이 아이를 돌봐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이참에 부모님 집으로 다시 가라 하는 마음으로 E의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는 너무 미안해하셨다. 그때는 정말 돌아오면 바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하나님은 일주일 내내 큐티를 통해 E를 용서할 것과 품을 것을 지속적으로 말씀하셨다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주님의 설득에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E가 연락을 해왔다.

친구부모님이 안 계신 사이에 친구네 집에 가 있었는데(친구 부모님 허락 안 받고 몰래) 친구 부모님이 오셔서 상황 알아보시고,  네 부모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가라고 하니 갈 곳이 없어진 E가 우리에게 다시 연락을 한 것 이었다.

 

 E의 연락을 받고 E의 아버지와 함께 순천으로 아이를 찾으러 갔다.

 

 가서 보니 기가 막혔다. 그 친구가 남자 아이였던 것이다. ...E가 내 생각하는 수준의 아이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E를 다시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를 내칠줄 알았다가 다시 받아줘서 그런가? E는 그 이후 뭔가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도 더 열심히 나가고, 뭔가 이제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듯한 마음이 드는 듯했다. 그러다가 예배 중 환상이 열려 지옥을 보고 성령충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아이는 어떻게든 전도를 하려고 했다. (물론 삶이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다.) 나와 남편에게도 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나는 어느새 E가 딸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E가 학원이라도 다니면 덜 심심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E도 그런 내 마음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몇 달 정도 지나서 월세 살던 주인이 집을 파는 바람에 원하지 않았지만, 나는 같은 아파트 더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방 세 개였을때는 E의 방이 하나 남았는데, 방 두 개 더 작은 아파트에서 E가 있을 공간이 마땅치는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 고민은 되었지만, 그래도 중 3때까지는 데리고 있자 싶어서 그냥 데리고 있었다. 어느새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E가 또 외박을 했다.  많이 좋아지고 있었고, 절대 외박은 안된다고..다시는 안한다고 둘 사이에 강하게 약속한 상태였는데..

 

 그쯤 되자..나도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는 데리고 가시라고.

 E의 아버지도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고, 집으로 데려가셨다. 다행히 다시는 고시원에  보내거나 하지는 않으셨다.

 

 E를 데리고 있으면서 나는 하나님이 얼마나 가난한 자를 품는 것을 기뻐하시는 지를 깨달았다.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과 공급은 내게 실제였다. 가난한 전도사 월급에 아이까지 돌보고 있는데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모든 것이 풍성했다. 또한, 영혼을 품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다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E를 보내고 얼마 후에 교회 가는 길에 마음에서부터 강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너무나 강하게 들려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 음성에 감격하며 걸어가면서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