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2월, 우리는 사랑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약 한 달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우리는 그 시간을 활용해 목포로 내려갈 준비를 하며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남편은 약 10일 동안 초락도 금식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다.
처음 하는 장기 금식이었다.
아이도 없고, 교회에서의 일도 없어 한가했던 나는 남편과 함께 기도원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나도 삼 일 정도 금식에 동참했다. 기도원에 있는 동안, 마치 내 안에 새로운 힘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십일 동안의 금식은 분명 고된 일이었지만, 남편은 끝까지 해내고 있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참으로 신기했다.
목포에서의 새로운 시작기도를 마친 후 우리는 목포로 내려왔다. 당연히 살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집값이 높았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적당한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부모님 댁에서 한 달 정도 머물기로 했다.
집을 구하지 못한 채 부모님 댁에서 지내면서, 나는 와우리 교회에 있을 때 들어가기로 했던 집이 괜히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결국 목포에서 민간 임대 아파트를 구해 이사를 했다. 하지만 동네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아 첫 보금자리에 대한 기대감은 다소 실망으로 바뀌었다.
부모님 댁에서 지내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건강한 부부가 결혼한 지 삼 년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건 불임일 수도 있다. 나는 입양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버님의 말을 듣는 순간, 부모님이 오랫동안 기다려 오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셨다는 느낌이 들었다. 죄송한 마음과 함께 속상한 감정이 몰려왔다. 동시에 ‘왜 벌써 포기하시지?’ 하는 반발심도 들었다.
그 순간,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라도 불임 판정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연하게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미뤄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다음 날 바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내 자궁 내막이 두껍다고 했다.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우리는 비용을 물었다. 그런데 검사비만 300만 원이 든다는 것이 아닌가? 치료비도 아니고, 단순한 검사 비용이 300만 원이라니.
병원을 나와 차에 오르는 동안, 나는 애써 눈물을 참았다. 혹시나 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은 서점에 갈 일이 있어 나를 차에 두고 내렸다.
남편이 떠나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속상했다.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마지막 테스트다’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래, 의사는 불임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주님은 기도 중에 계속 아이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 나는 주님의 말씀을 믿을 거야.’
그렇게 결심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교회에 나가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의 강청하는 기도’ 말씀을 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언제 주실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믿음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 머물고 그것을 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그 과정에서 환경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결국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는 이제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믿음이란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