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육아와 내면의 갈등

2025년 4월 3일 · 김지혜


그리고 10개월이 지나 첫 아이를 출산했다.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이 아이가 내게는 너무 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이 출산하기 딱 한 달 전 하나님은 새로 생긴 주공아파트?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옮겨주셨다.)

 

산후조리를 끝내고 집에 있는데,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항상 저녁 8시, 아이를 씻기고 재울 때쯤이면 밀려

왔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그리고 기도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평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셨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했다.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랐지만, 말도 잘 들으면서도 나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가까이 계셨음에도 아이를 맡기면 내가 올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듣거나 아이를 맡겨놓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귀하고 소중했기에 기쁘게 감당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짜증이 났다. 남편은 자유로운데 나만 혼자 고생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웃으며 맞이해야 하는데, 점점 그러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청년부가 부흥하면서 남편은 더 바빠졌고, 주변에는 늘 청년들이 끊이지 않았다. 남편은 사역에 헌신하고 있었지만, 나는 점점 소외감을 느꼈다. W교회에 있을 때는 내가 교회 모임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중등부 사역도 함께했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육아를 하면서 점점 외롭고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청년들과 남편을 향한 질투심이었다. 나는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했지만, 남편 주변의 청년들이 영적인 은혜를 받으며 남편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 기쁘기도 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청년들이 은혜를 받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그들에게 성령의 세례가 강력하게 임하거나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약간은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먼저 시작했는데, 뒤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에 대해서 당연히 그럴수 있다고 여겼지만, 때로는 남편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의 사역이 갈수록 많아지고 바빠졌기 때문이다.) 남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청년들이 눈이 띌 때에는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제일 싫은 건 이런 감정을 품는 나 자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청년들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왜 경계하고 있는 걸까? 나는 정말 사역자가 맞을까? 이곳에 대한 부르심은 없는 걸까? 죄책감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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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나랑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그런 감정을 품는 것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너무 죄책감으로 반응을 했었던 거 같다.

 

오히려 내쪽에서 더 마음을 열고 품었으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휠씬 유익했을텐데, 그 당시만 해도 난 그걸 잘 몰랐다.

 

중등부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들도 똑같은 영혼이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한건데, 난 사랑의 대상으로 청년들을 잘 보지 못했던 거 같다어찌보면 

 

하나님의 관점보다 인간적인 관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이런 어려움을 토로하면 남편은 항상당신이 먼저 더 다가가서 사랑해주어야 하는데, 왜 그러냐고 답답해했다. 당시 남편도 내 마음이나 상황을 잘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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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외감나 질투심, 죄책감들은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더욱 괴로워졌다. 그리고 점점 내 안의 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 예전처럼 집중해서 기도하러 어디로 떠날 수도 없었고, 기도하다가도 방해받기 일쑤였다. 내 안의 죄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꼭 이런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 죄를 이기는 게 이렇게 어려우면 복음이 과연 복음일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선하신 하나님은 이번에도 내게 응답하셨다. 남편이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한 지 2년째 되던 해 여름, 김용의 선교사님의 “복음학교”에 다녀와서 죄성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을 깨닫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예수님만이 아니야. 로마서 6장에 따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과 연합되었다는 거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또한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어. ”

이것까지는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원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몰랐다. 남편은 말해주었다.

 

“죄를 짓는 나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죄를 이기는 예수의 생명을 내가 이기기 힘든 죄에 적용하면 돼. 단순히 진리를 적용하는 거야. 주님이 이미 죄값을 갚으셨으니까 더 이상 죄 아래 있을 필요가 없어. 십자가의 복음을 의지해서 죄성을 이기려고 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였기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내 죄성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삶에 적용하면 되는구나!'라는 것이 순식간에 깨달아졌다. '아 맞다. 우리가 예수님 믿을 때도 예수님이 하신 일은 단순히 믿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거지, 그것처럼 죄성을 이기는 복음도 그렇게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삶의 영역에 구체적으로 받아들여 적용하는거구나! 그리고 그럴때 그 진리는 힘을 발휘하겠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진리인것 처럼 내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했다는 그 진리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적용되겠구나...그럼 한번 적용해보자~!' 이런 깨달음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끝없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 억지로 참거나 생각을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끝없는 생각과 의심으로 역사하는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평안과 믿음이 역사합니다.”

그렇게 계속 선포했다. 처음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의 갈등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예전처럼 몇 시간씩 기도해야 겨우 잠잠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진리를 적용할 때, 죄성과의 싸움이 훨씬 쉽고 자유로워졌다.

 

복음은 정말 복음이었다. 예수님이 다 만들어 놓으신 것이었다.

이전에는 죄와 싸우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고, 변화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죄성을 다스리는 것이 가능한 일로 다가왔다. 나는 점점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 안에서 자유를 경험하고 있었다.


로마서 1장에 나온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 구절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여전히 넘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정직하게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이기고 싶은데 안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붙들고 있어서, 이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 영역까지는 잘 깨닫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