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부 아이들만 따로 모아놓고 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대학부에 집중하며 훈련을 시작하자, 아이들은 눈에 띄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청년부 시절, 남편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과 기도에 대해 강조하며 훈련을 시켰다. 반면, 대학부에서는 말씀 훈련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대학부 아이들은 말씀에 대해 더욱 정직하게 반응했다. 죄성을 이기는 복음을 적용한 이후라서일까, 혹은 나이가 어려서일까? 그들은 질투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순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청년부를 섬길 때는 ‘내가 청년부를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없었지만, 대학부를 위해 기도할 때는 진심 어린 사랑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리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학부는 60명 규모로 성장했다. 그중 몇몇은 지금까지도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감동이 들려왔다.
2년 반 동안 사역에 쉼 없이 헌신한 탓일까? 남편은 점점 탈진해갔고, 이대로 사역을 지속할 수도, 지속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잠시라도 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이제는 옮겨야 할 때인가?’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사랑의 교회에 있으면서도, W교회 시절부터 우리를 따뜻하게 섬겨주셨던 한 집사님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분은 우리가 교회를 옮겼어도 기도로 계속 중보해 주셨고, 성령 사역에도 깊이 있는 이해가 있는 분이었다. 당시 그분도 W교회를 떠나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전도사가 된 상황이었기에, 영적인 교제가 더욱 편안하게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기도와 성령의 사역을 가르치며, 작은 선교회를 조직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그녀와 함께한 기도 모임에서 한 집사님이(우리는 모르는 집사님) 우리 남편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하던 중 ‘유학’에 대한 감동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공교롭게도 사랑의 교회에서 기도하는 몇몇 청년들과 대학부 학생들도 같은 감동을 받았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엔 무언가 분명한 흐름이 느껴졌다. 게다가 그 집사님은 내가 임신을 하게 될 것이며, 아들을 낳게 되고, 미국에서 출산할 것이라는 예언까지 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다소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기도할수록 떠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긴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기도 했다. 남편이 청년부와 대학부를 섬길 때,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개척 훈련을 시키고 계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매일 새벽예배를 따로 드리며 사역을 했고, 나 역시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것이 개척을 위한 준비 과정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이제 네게 ‘부(部)’ 자를 떼어주겠다”라는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의 나이는 고작 32세. 개척을 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을 다녀와서 개척을 하라는 뜻인가?’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나는 확실하게 ‘유학을 가라’는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떠나면 길이 열리겠지”라는 믿음을 품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남편에게 ‘6월까지만 사역을 하고 떠나라’는 감동을 주셨다.
하지만 교회의 사정상, 6월에 사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여름 선교 일정이 잡혀 있었고, 남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단기 선교팀을 인솔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또한, 교회의 관례상 보통 11월까지 사역한 후에 정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편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와 하나님의 감동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관례에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결국 남편은 담임목사님께 이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백동조 목사님께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까지의 사역 과정, 유학에 대해 받은 감동등의 내용을 상세히 담아 보냈다. 목사님은 깊이 고민하신 듯했고, 결국 이렇게 답장을 주셨다.
“가더라도 내 밑에서 몇 년 더 훈련을 받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 허락해주겠다. 내가 자네를 내 아들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앞길을 막고 싶지는 않다.”
담임목사님과는 원만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지만, 문제는 수석 부목사님이었다.
그분은 “교회 일정상 11월까지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6월에 떠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 맞느냐?”라고 강하게 반문하셨다.
남편은 차분히 대답했다.
“목사님,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시기에 그만두는 것이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데, 제가 그걸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담임목사님이 허락하신 상황에서 수석 부목사님이 반대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분은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6월보다는 더 늦은 8월 초쯤 우리는 사랑의 교회 사역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