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다시 화성으로

2025년 4월 15일 · 김지혜


지금도 그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2010년 8월 10일.
우리가 다시 화성으로 이사 온 날이었다.

'유학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올라왔다. 이쪽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교회도 옮겨야 할 상황이었던 터라 어디서 새 출발을 준비할지 고민했지만,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집이었다. 목포에서 여러 번 올라올 형편도 되지 않았고, 마침 우리에게 "유학 가라"는 마음을 전해주신 전도사님을 통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결국, 한 번도 보지 못한 집을 그분이 대신 알아보고 계약해주셨다.

그리고 이사를 와서, 처음 그 집을 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물론, 목포보다 집값이 비싸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현실은 훨씬 더 거칠었다. 단 한 동만 덩그러니 떨어진 낡은 아파트. 주변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동네 전체가 허름하고 공기도 나빴다.

목포는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자연환경만큼은 참 괜찮았는데…
오랜만에 다시 올라온 경기도는 숨 쉬는 것조차 답답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모든 것이 더 무겁고 벅차게 다가왔다.

갑자기, 현타가 왔다.
"우리가 뭘 한 거지?"
잘 지내던 곳을 떠나 유학을 온다고 올라오긴 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가진 돈은 퇴직금처럼 받은 500만 원이 전부. 나는 몸이 불편해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걸까. 갑자기 모교인 아주대에 가자고 했다.
우린 그대로 차를 몰아 아주대로 향했다.

학교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대 근처로 이사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왜 하필 화성으로…’
하지만 사실 아주대 근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대는 남편과 나, 둘 다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의 삶을 배워갔던 우리의 영적인 고향이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었다.

'그래, 지금까지도 주님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인도해주시겠지.'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쌍무지개가 떠 있었다.
(그날, 비가 약간 내렸던 것 같다.)

 

순간, 그 무지개가 마치 하나님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갈 길조차 막막했지만…
그 무지개 하나가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비록 지금은 낯설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작은 믿음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