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어지러운 전환기, 조슈아 열방 선교회로 모이기까지

2025년 4월 15일 · 김지혜


어지러운 전환기, 조슈아 열방 선교회로 모이기까지

한참 후, 당시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니 이러했다.

 

W교회는 담임목사님께서 성령사역을 중심에 두는 분은 아니셨다. 남편이 교회를 옮긴 후, 성령사역에 목마름을 느끼던 몇몇 집사님들이 M전도사님(당시는 집사였던)과 따로 영적인 양육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M전도사님은 말씀 훈련이 잘 된 분은 아니셨고, 이것이 담임목사님이나 사모님 입장에서는 다소 위험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 경계심을 M전도사님은 개인적인 상처처럼 받아들이셨고, 안타깝게도 그 감정을 잘 풀지 못하고 목사님, 사모님에 대한 뒷말도 종종 하셨던 듯하다.

 

그런 이야기들이 결국 목사님 귀에 들어갔고, 애써 모른 척 넘기셨지만, 결국 M전도사님이 다른 교회 전도사로 임명되고 교회를 떠난 이후, 교회가 평안을 되찾았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몇몇 집사님들은 여전히 M전도사님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영적인 부분은 그분을 통해 채우려 했다.

 

이런 와중에 우리 가족이 목포에서 올라오자, W교회 담임목사님은 우리가 M전도사님과 함께 따로 교회를 개척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하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W교회 내부 상황을 내가 너무 몰랐던 것도 사실이다. 담임목사님 입장에서는 성도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으셨을테니,  그런 판단을 내리신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불러서 같이 이야기면 했었도 오해를 풀 수 있었을텐데...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새부대 교회는 아예 개척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상황이 돌아가니  W교회에 다니던 잘 다니고 있던 언니와 동생도 결국 우리와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M전도사님의 장점도 약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선교회를 함께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상황상 같은 편으로 몰려버리니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차라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도사님이 선교회를 잘 조직할 수 있게 돕고, 때가 되면 떠나자고 마음을 정했다.

M전도사님 곁에는 W교회 출신 집사님들 외에도 다른 교회에서 오신 두 가정이 있었다. 이 두 가정은 M전도사님과 마음이 일치되어 선교회를 조직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목포에서 올라온 청년 2명, 우리 언니와 동생, 우리 가족, M전도사님과 집사님 두 가정이 **‘조슈아 열방 선교회’**라는 이름 아래 모이게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W교회와의 관계가 어긋난 것도 속상했고, 원치 않았던 선교회에 끼어버린 것도 싫었고, 유학은 기미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지금은 주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라며, 선교회 조직에 마음을 다해 도와주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목포 청년부 출신 몇몇 청년들이 더 합류했다. 어떤 청년은 이 지역에 살고 있어서 왔고, 또 어떤 이들은 기도 가운데 인도하심을 느끼고 올라왔다. 

 

어느새 선교회 안에는 M전도사님과 함께하던 이들보다, 우리와 함께하던 청년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그게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전도사님이나 기존 집사님들만 있었다면, 언젠가 때가 되면 조용히 떠날 수 있었겠지만, 이곳에 오직 우리를 따라온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책임감이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님이 언젠가는 우리를 보내실 텐데…’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으로 유학을 위한 기도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유학에 대해 특별한 감동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오해받는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억울해서라도 정말 유학을 꼭,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주변에서는 유학 갈 거라는 감동들을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내게는 아무런 말씀도 감동도 없었다. 기도할때마다 평안함과 기름부음이 와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유학에 대한 구체적인 감동은 계속해서 주시지 않았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거나 하면 꿈으로든 감동으로든 하나님이 잘 주시는 편인데, 이번에는 왜 그러지 의아했다. 

 

그러다 2월, 막달쯤이 되어서야 내 마음이 정리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그동안은 거의 집착처럼 유학길을 열어달라고 매달렸었는데, 2월이 되자 그 모든 걱정과 집착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아기 낳으러 가야겠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 같았다.
선교회의 틀은 잡혔고, 남은 일은 이제 M전도사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