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친정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M전도사님은 반대하셨다.
"내려가시는 게 뜻이 아닌 것 같아요. 이곳에서 낳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살 곳도, 산후조리를 할 환경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받은 마음도 이제는 다 정리하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후의 일은 주님께 맡기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교회로 옮겨와 한창 기도 훈련을 받고 있던 근식이(지금의 바울 목사)가 찾아와 말했다.
"누나, 내려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내려가면 길이 열릴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동생의 감동대로 일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부모님께는 미리 말씀을 드렸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일단은 친정에 내려가 산후조리를 하고, 이후의 길은 그때 가서 다시 알아보겠노라고.
남편과 나는 캐리어 두 개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들고 친정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임신 막달이었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남편의 마음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하룻밤을 친정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 남편은에게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가난한 목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 순간,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렸다고 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로다.”
성령님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남편의 마음엔 ‘가난한 목사’라는 말이 더 깊이 새겨졌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2주동안 친정에 있는 남편의 모습은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
당시 나는 그저, 처가댁에 얹혀 있는 것이 힘든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이런 마음속 깊은 무게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우리 친정부모님은 엄청 다정하신 편은 아니지만, 자녀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분들이다. 그런데 난 우리 부모님이 그렇다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처음 경험했다.
많은 것이 궁금하셨을 텐데,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나에게도, 사위에게도.
부모님께는 집을 정리한 뒤 남은 보증금을 가지고 있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계룡에서, 엄마의 도움을 받아 둘째 ‘기쁨이’를 잘 낳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쁨이를 낳을 즈음, 우리에게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가 친정에 내려간 지 2주가 지나, M전도사님이 쓰러지신 것이다.
남편이 떠난 뒤, 공동체의 짐을 홀로 감당하던 그분은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당시 조슈아 열방 선교회는 M전도사님이 담임전도사, 남편은 협동목사였다.
우리는 그분을 잘 세워드리고 떠나는 것이 맞다고 여겨, 담임의 역할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공동체를 세우고, 훈련시키고, 인테리어 헌금이며 기숙사 잔금까지 대부분을 우리가 감당했다.
전도사님께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할 이야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남편은 병원으로 전도사님을 찾아갔다. 전도사님은 병원에서 많은 것을 돌아보신 듯 했다. "목사님, 공동체를 세우는데 제가 한 역할은 별로 없는거 같애요. 사실 목사님이 다 하셔잖아요. 제가 담임을 하는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저는 공동체의 짐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부족한거 같아요. 우리 위치를 바꾸어야 할 거 같아요.."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은 공동체에 복귀하게 되었다. 근식(바울목사)의 말대로 내려가서 길이 열린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가 다시 간다면, 그것은 ‘교회 개척’이 될 텐데, 선교회 이름으로 계속하는 게 맞을까?
그리고 유학에 대한 감동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 정말 우리가 나온 교회에 거짓말을 하고 나온 꼴이 되는데, 체면은 뭐가 되나?
여러가지 마음이 들었다.
감동에 대한 혼란도 밀려왔다. 잘못된 감동을 듣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 이런 확신이 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설사 감동이 틀렸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렇다면 감동이 맞고 틀리고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편은 먼저 공동체를 위해 2주만에 올라가고, 나는 아이를 낳고 한 달 정도 조리를 마친 뒤 그를 따라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