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동체로 올라가기로 결정되자,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제 어디에서 살아야 하지?”**였다.
더 이상 보증금을 낼 돈도 없었고, 기숙사가 있긴 했지만 그곳은 남자 청년들이 쓰는 공간이었다. 네 식구가 살아야 하는 이 시점에,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양쪽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어도 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기도만 했다.
“하나님, 우리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공간을 주세요.”
우리가 살 공간의 보증금은 당시 재정을 담당하고 계셨던, M전도사님이 마련해주셨다. (나중에 이사갈때 돌려드렸던 걸로 기억이 난다. )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약 천만 원 정도였다.
전도사님은 네 식구니까 방 두 개는 있어야 한다며 교회 근처의 빌라를 구해주셨다.
하지만 그 집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기는…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
귀신 나올 것 같은 음침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너무 습해서 작은 방엔 곰팡이도 자주 피었다. 왜 이런 집을 구했지? 그냥 좀 넓은 것만 보았나?
새로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기엔, 환경적으로 너무나 열악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살았던 모든 집 중에 그곳이 가장 안 좋았다.
거기서 산 건 고작 석 달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가장 힘들었던 시절로 기억된다.
한번은 어느 여름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짜증이 나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아기를 업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 계속 있다가는 애들앞에서 폭발할거 같았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동네를 걷다 보니, 큰길가엔 술 취한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와중에 아기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울고 싶었다.
아기가 없었으면 차타고 어딘가 멀리 갔을텐데..(모유를 먹이는 중이라 떼고 나올 수가 없었다. TT)
그때 하나님은 내 모든 손과 발을 단단히 묶어 두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견디고 있던 어느 날,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다.
3개월 후, 언니의 제안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마침 남자 기숙사가 여자 기숙사로 전환되었고, 언니는 그곳에서 훈련을 받겠다며 자신이 살던 동탄의 주공 아파트를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조카와 함께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그때 나는 고맙다는 생각은 했지만, 충분히 고마워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자기 공간이 매우 중요한 언니가 나를 위해 그 공간을 내어준 것은 참 크고 깊은 사랑이었다.
아마 조카들을 향한 사랑이 컸기에 그렇게 결정했었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동탄의 아파트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