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아이들을 통한 은혜

2025년 4월 17일 · 김지혜


W교회에 있을 때, 부흥사로 오신 D목사님께서 부흥회 중에 하신 말씀이 있었다. 

요셉의 삶을 예로 들며, 하나님의 사람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시기를 지나간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빼기의 시간이 오겠구나 생각은 했다.

W교회에서의 시간, 그리고 이후 S교회에서의 시간은 분명 ‘더하기’의 시절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도 했지만, 하나님은 분명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풍성하게 응답해주셨다.
기도한 대부분의 일들이 빠르게 응답되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풍성히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절, 나는 집 보증금을 헌금하면서도,
‘이렇게 해도 하나님이 곧 채우시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이전에 수없이 먼저 헌신하게 하시고 곧바로 채워주셨던 하나님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빼기의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환경적인 어려움들 속에서,
하나님은 내 내면의 어둠과 훈련되지 않은 부분들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하셨다.
나는 스스로 사역자의 삶은 주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지만,
현실의 조건이 조금만 낮아져도 쉽게 무너지는 나를 보며,
내가 말했던 믿음과 실제 내 믿음 사이의 간극을 알아가게 되었다.

물론, 극단적인 가난에 놓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필요할 때마다 공급해주셨고,
예배 때마다 부어주셨던 강력한 기름부음과 평안의 은혜도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아이들이었다.


은진이와 기쁨이

은진이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늘 밝고 단단했다.
늘 기도하는 환경 안에 있었기에,
기도하고 예배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공동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꿈에서 천국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도 종종 하곤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 하나님은 은진이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화성 집에서 짐을 다 빼던 날,(친정에 산후조리하러 내려가려고)

이사를 앞두고 갑자기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마 티가 났던 모양이다.
갑자기 은진이가 다가와 “엄마, 기도해.” 하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나는 곧장 기도했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또 하나의 사건은,
우리가 언니 집에서 나와 원룸으로 옮긴 후에 일어났다.
그때 나는 셋째 아이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유산을 겪게 되었다. 

당시 나는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많이 침체되어 있었다. 

그저 언제까지 이 좁은 집에서 살아야 하나,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가…
끝없는 의심과 시험에 빠져 있었던 중이었다.

그런 중에 돈은 한가득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 나서 유산이 되었기에, 어쩌면  내 죄로 인해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뭐라 말할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다. 

가족 모두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주었지만, 그 어떤 말도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도 가까이서 내 마음을 위로해주셨지만,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은진이가 꿈을 꾸었다. 

예수님께서 뱃속에 있던 아기 ‘반석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위로를 받았다.

은진이가 평소에도 영적인 꿈을 자주 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내겐 단순한 위로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 이후, 반석이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고,
그 믿음이 내 슬픔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기쁨이, 그리고 위로

기쁨이는, 우리 가정에 가장 힘든 시기에 태어났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환경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신생아 때는 자주 토하곤 했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커가면서 식탐이 많아서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식탐도 어려운 환경에서 임신하고 출산해서 그런가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아이는 겁이 많았다. 은진이와는 다르게 여러가지 면에서 손이 많이 갔다.


난 이런걸 아이의 개인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였어야 하는건데, 그때만 해도 어려운 환경이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받아들였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단이 내 마음속에 어두움과 우울의 씨를 뿌리고 있는 걸 내가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기쁨이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 아이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

한 번은 언니가 큰 어려움을 겪은 후 예배 시간에 기쁨이를 안아주었는데,
“내가 아기를 안은 게 아니라, 아기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어.”
하며 말해준 적이 있었다. 언니 말고 여러명의 지체들이 기쁨이를 보면서 사랑스러움과 위로를 느꼈다. 


기쁨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작은 위로자였다. 

기쁨이는 누구에게나 잘 웃었고, 잘 먹었고, 사랑스러웠다.
공동체 안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생각해보면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은 성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