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본 지 한 달쯤 지났을까. M전도사님은 하나님께 강하게 압박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지금 당장 중국으로 떠나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요.”
아무도 가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전도사님은 마치 스스로 내몰린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서운 징계를 내리실 것 같다는 그 말투에서, 나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전도사님은 홀로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아, 여기서 훈련을 마치고, 이제는 파송되어 가는구나.” 그런 흐름이라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응원하며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남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전도사님은 중국에서 점점 시험에 빠져드는 듯했다. 혼자 있는 시간, 낯선 환경, 낯선 언어… 늘 사람들과 함께 사역하며 지냈던 그분에게는 혼자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낯설고 버거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님이 나에게 “목사님도 이제 이곳으로 오라는 감동을 받는다”며 예언의 메시지를 전해오기 시작했다.
그 말에 솔직히 기분이 몹시 상했다.
“여기에 여전히 청년들이 있고,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도 많은데… 지금 목사님이 중국으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도사님이 말해온 ‘감동’이라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 중심이었을까? 혹시 자신의 외로움이나 필요, 바람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원래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 믿은 사람은 왠만하면 끝까지 믿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 의심 또한 쉽게 떨치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기쁨이가 여섯 달쯤 되었을 때, 전도사님이 중국에 가신 지 세 달쯤 지난 시점에 우리가정은 두 집사님 가정과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 전도사님의 상황도 궁금했고, 두 집사님 가정이 조만간 그쪽으로 갈 계획이 있었기에 겸사겸사 움직인 방문이었다.
중국에서 마주한 전도사님은 많이 외로워 보이셨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 표정, 말투 속에 감춰진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래서 위로해드리려고 마음을 다했다. 같은 방을 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밤, 전도사님이 갑자기 말했다.
“사모님, 나는 하나님이 정말 무서워요.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버렸잖아요…”
그 말은 꼭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해서 하나님이 이 낯선 땅에 나를 떨어뜨리셨다”는 식의 말투였다. 나는 금방 알아챘다. 전도사님의 깊은 속마음이었다.
그분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파송’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분리’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이 그분에게 더 깊은 훈련의 자리로, 더 이상 함께 있어서는 안 되기에 떨어뜨려 놓으셨다는 것을.
그날 밤 전도사님은 기도해주겠다며 또다시 예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전히 "이곳으로 오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도 속에서 아무런 기름부음도, 감동도 느낄 수 없었다.
예전 W교회 시절, 그녀의 기도에는 분명히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나는 말없이 듣고, 그냥 “그러시군요”라고만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하나님께도, 우리 모두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전도사님과 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마 전도사님은 서운했을 것이다.
이것은 파송이 아니었다. 분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집사님 가정도 중국으로 떠났다.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S선교회와 새부대교회의 연결은 끊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