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교회 초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이었던 그 시절.
옆에서 지켜보는 나조차도 막막했을때가 많았는데, 직접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사역했던 남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한 사람 한 사람 새롭게 교회 문을 두드린 성도들은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래 지내시다보니, 말씀을 온전히 깨닫거나 순종하기 어려워했다.
그런 성도들을 섬기며 남편의 마음도 상처를 받았다. 성령의 능력과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될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는 변화되지 않는가?”라는 낙심이 틈타며, 남편은 수많은 밤을 고민 속에서 보냈다.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도, 그들은 감사나 헌신으로 응답하기보다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오기 일쑤였다. 자기중심적인 반응은 역기능적인 삶의 구조에 오랫동안 묶여 있던 탓이 컸을 것이다. 생전 접해보지도 않은 문제들을 가지으는 성도들..남편을 주님께 물으며, 주님께 기도하며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자신들의 오래된 문제들이 풀려져가는 것을 경험한 성도들은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과 가정이 어떤지 돌아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이를 당연히 여겼다. 하지만 나중에 부목사님이 오셔서, 우리 교회 성도들의 태도, 특히 사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너무 무관심한 태도를 보고는 “육적인 교회에서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셨다. 돌이켜보면, 남편의 강한 기름부음과 실제적인 도움에 성도들이 지나치게 의존했던 탓이 컸던 거 같다. 성도들은 목사님을 뭐든지 알아서 잘 해결하시겠지, 괜찮으시겠지..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여기가 경기도라 그런가?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목회자를,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동네인가?”라고 그당시는 막연히 여겼다. 남편은 거의 매일 기름부음 사역을 했다. 그 기름부음은 넘쳤고, 성도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음으로 그 은혜를 금방 쏟아버리기도 했다.
남편은 점차 목회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다. “복음과 성령의 능력만으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렇게 몇년을 사역하다가 어느날, 그는 “밭”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져도, 모든 밭이 좋은 밭처럼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좋은 밭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밭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마다 은혜받고 변화되는 때가 다르다는 것을.
나는 남편의 마음이 그러함을 알았지만, 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거나 용기를 북돋아주진 못했다. 내 안에 자꾸 들어오는 어두움과 우울한 생각들에 하루하루 쳐내면서 살아가기 바빴다. 오히려 남편이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것 같아 원망하기도 했다.
아빠가 공무원이셨던 덕에 우리 집은 여유롭지는 않았어도 경제적 굴곡 없이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개척을 시작하며 살기 힘든 집, 언니 집, 원룸을 전전하는 삶은 나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고, 귀여운 아이들을 키우는 기쁨도 있었지만, 환경적 어려움과 교회 안의 사건사고들은 내 마음을 흔들곤 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어쩌다 이 낯선 곳에 오게 되었을까? 먼지 많고 열악한 이곳에 왜 왔을까? 인도하심을 잘못 받은 건 아닐까?” 끊임없는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예배 속 주님의 임재는 늘 답이 되었다. '잘못 온 게 아니다. 지나가는 과정이다.' 내 영은 답을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안정된 삶을 원하는 내 성향은 현실을 더 비참하게 느끼게 했고,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불러왔다.
그러던 중, 대학동기의 아내가 서울에서 이사 와 우리 교회에 출석했다. 남편은 같은 학교 IVF친구였고, 아내역시 다른 학교 IVF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친구의 가정이라 무척 반가웠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끌어당기는 듯 보이기 싫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의 아내와 교제하며 어느날 이사온 집에 놀러갔는데, 순간 온갖 쓴 마음과 비교의식이 강하게 올라왔다.
친구는 이미 30평대 아파트를 사서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집안도 잘 꾸며져 있었다. 반면, 나는 집도 없이 고생 중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나는 사역자의 길을 선택했고,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며 안정된 삶을 꾸렸다. 당연한 차이였다. 하지만 내 안에서 쓴 마음이 치솟았다. “나도 교육대학원 대신 취업을 했더라면, 남편이 주의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별의별 생각과 원망이 올라왔다.
그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안의 밑바닥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예배 중에 주님의 십자가를 마주하며 회개했다. “주님은 나를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셨는데, 나는 작은 것 하나 버리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하는구나. 언제부터 이렇게 변질된 걸까? 원래 이 수준밖에 안 되는 걸까?”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마음에 자유함과 감사를 회복시켜주셨다.
그렇게 마음의 자유를 얻은 뒤, 놀랍게도 근처의 주공아파트 공고가 나왔고, 지원하여 곧 입주했다. 2년간의 주거 고난, 특히 원룸에서의 10개월이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긴 시간도 아닌데, 당시에는 그 시간이 오랫동안 계속될까봐 두려워하며 속으로 얼마나 많은 난리를 쳤는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내 마음을 겸손케 하시는, 주님을 스스로의 힘으로 따르려고 했던 나의 의가 얼마나 바닥인지 알게 아시는 하나님의 연단과정이었다.
그 친구 가정은 결국 우리 교회에 정착하지 않았다. 당시엔 아쉬웠지만, 나중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