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부르심 앞에서의 저항, 하나님의 엄위하심

2025년 5월 8일 · 김지혜


 당시 우리 교회에는 결혼 적령기의 청년들이 여럿 있었다. 이제 막 개척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교회치고는 청년들이 많은 편이었고, 청년반과 장년반으로 나뉘어 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개척 초기부터 교회 안에서는 커플이 생겨났다. 서로 마음이 맞아 교제를 시작해 결혼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었고, 서로 호감은 있으나 표현하지 못하던 중 목사님이 중간에서 중재해주어 맺어진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교회에 함께 남아 있는 부부가 있고, 교회를 떠난 부부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그들 모두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목사님에게 중매의 은사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부터 전할 이야기는 그 시기에 있었던, 동생 근식이의 이야기다.

어느 날, 청년들이 모여 남편과 성경공부를 하던 중 남편에게 감동이 임했다. 그는 몇몇 남자 청년들을 지목하며, 지금이 그들의 결혼을 풀어내야 할 시기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들은 마침 교회 안에 마음에 둔 자매가 있는 청년들이었다. 근식이도 속으로는 그 감동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근식이는 보람이라는 자매와 교제 중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근식이에게 이렇게 전했다.
 "지금은 네가 결혼보다 먼저 사역을 풀어내야 할 때다. 사역을 온전히 풀어내면 결혼은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허락하실 거야."

 근식이는 당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을 정성껏 섬기며 교회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신학교 입학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수도 있지만, 근식이는 그 감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왜 나만 사역 먼저 풀어야 해요?! 나도 결혼 먼저 하고 싶어요!”

 

 사실 근식이 상황은 결혼을 하기에 적절한 상황도 아니었다. 아직 신학교도 가기 전이었고, 재정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완악하게 반응하는게 이상했다. 너무 당연한걸 왜 저렇게 반응하지?

 

 알고봤더니, 그 안에는 오래된, 잘못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코 결혼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과거 몇 번의 실패한 연애가 그런 믿음을 만든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짝이 아니었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고, 오히려 헤어지길 잘한 일이었는데…)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보람이를 자신에게 허락하시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을 마음속에 은밀히 품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종으로 쓰시려는 사람 안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그냥 두시지 않으셨다.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오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근식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드러내시고 제거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두려움 앞에서 근식이의 반응은 회개와 순종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완악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는 자신의 뜻대로 결혼을 밀어붙이기 위해 보람이의 집으로 내려갔고, 보람이 집에서 크게 거절을 당했다. 그리고 그 일로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A형 간염에 걸렸다.

 

 처음에는 며칠 앓고 나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병은 점점 악화되었고, 황달까지 와서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대전의 병원에 있었고, 집안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외아들이 죽게 생긴 상황이었다.

 

 나는 동생이 걱정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는 명절 즈음이라 함께 친정에 있었는데, 동생이 몸이 안 좋다고 하길래 내가 부황을 떠주었는데, 그날 입원을 한 거였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차가웠다.
 “하나님께 그렇게 은혜를 받아놓고, 그 부르심을 거부했으니 맞는 거야. 온전히 회개해야 나아.” 남편은 영적으로 모든 상황을 보고 있었다. 

 

 남편이 사역자로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전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근식이도 그게 하나님이 뜻인 걸 잘 알고 있었다.(그정도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은사와 능력이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거절하고 순서를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보실때에 반역적인 행동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부르심을 거절할 때 징계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동생이 징계를 받는 상황이지만, 마치 나 자신이 맞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분이라는 마음도 깊이 들어왔다.

동생의 황달은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병이 낫고 싶어서 계속 회개도 했지만, 그 회개는 하나님께 닿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로 죽을 수 있겠다는 동생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올라와.”

 

 그때 근식이의 하나님 앞에서의 숙제는 부모님으로부터의 분리와 온전한 회개였다. 근식이는 혼자 훈련을 받으며 독립하려고 애썼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근식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씩 올라와서 돌아보면 늘 근식이만 걱정하곤 했다. (언니도, 나도 같은 지역이 있었는데..) 근식이 역시 힘들면 한번씩 부모님 그늘 아래로 들어가곤 했다.

 

 병원에서는 “지금 올라가면 가는 길에 죽을 수도 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근식이는 “올라가야 살 수 있다”는 마음이 강했고, 부모님을 설득해 결국 한림대 병원으로 옮겼다.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성령께서 근식이에게 감동을 주셨다.
 “옆 침대의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복음을 전해라.”

 자신도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근식이는 그 감동에 순종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서히 병이 낫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내게도 오랫동안 깊은 고민과 성찰을 안겨주었다. 

 동생이 겪은 이 훈련을 지켜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숨겨두고 모른척하며 순종하고 있지 않은 영역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엄중한 일인지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분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어릴 때부터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 일인지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근식이는 딸만 셋이던 우리 가정에, 엄마가 간절히 기도한 끝에 얻은 아들이었다. “아들을 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기도하셨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근식이를 주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을 주의 종이 될 사람으로 키우지는 않으셨다. 사랑은 넘치게 주셨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한 의도적 훈련이나 준비는 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 근식이는 주의 종으로서 준비되기 위해 삶에서 많은 연단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누나로서 그런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어릴 때 권위에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잘 가르쳤더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진 않았을 텐데.”
그런 마음이 자주 들곤 했다.

 

 이런 성찰과는 별개로, 형제로서 나는 복잡한 감정도 함께 느꼈다.

 “지금 개척교회하며, 아이 셋을 키우고, 온몸으로 고생하는 건 나인데… 왜 늘 아들만 그렇게 신경을 쓰지?”
 “처음부터 훈련시키라고 우리에게 맡긴 거면, 끝까지 맡겨야지. 왜 중간중간 흔들리면서 결국 훈련이 흐트러지게 만드시는 걸까?”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 서운함과 서글픔은, 신앙적인 이해로만 덮을 수 없는 인간적인 아픔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부모님에 대한 이런 감정은 한동안 내 안에서 쉽게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