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광야의 끝

2025년 5월 10일 · 김지혜


 

동탄 주공아파트에서의 생활은 길지 않았다. 아마도 1년 반쯤 되었을 것이다. 셋째 희원이를 임신하면서 아파트에 들어갔고, 아이를 낳고 몇 개월을 보내고는 곧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그쯤 되었던 것 같다.

희원이를 낳기 전, 내 몸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셋째라서 그런가 보다, 막달이 힘든 게 당연하지 하고 넘겼던 것 같다. 남편이 내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고 자주 말했지만, 그저 “조심해야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희원이는 예정일보다 한 달 가까이 이르게 태어났다. 다행히 출산 가능한 주수 안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몸이 정말 많이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감사하게도 좋은 산후도우미를 만나 조리는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온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어느 날, 남편 앞으로 우편물이 도착했다. 신용대출 원금 상환 시기가 다가왔다는 통지였다. 금액은 무려 1,000만 원.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집에는 대출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다. 알고 보니, 몇 년 전 M 전도사님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 S선교회와 관련한 재정이 급히 필요했는데,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M 전도사님과 K 집사님, 그리고 남편이 상의하여 남편 명의로 신용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난 무슨 자산도 하나도 없는 사람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나 싶었지만, 남편이 교회 담임목사였기에 신용대출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나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나중에 갚기로 했다고 대신 빌려준 돈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그분들의 상황은 잘 풀리지 않았고, 몇 년동안 빚을 갚지 못해 이자만 내고 있다가 원금 상환일이 돌와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재산이 없으면 우리가 제일 없을텐데 남편의 이름으로 돈을 빌린 것도 그렇고, 몇 년동안 그것을 갚지 않은 것도 그렇고이 이야기를 나한테 안 한것도 그렇고.

 

남편과 여러 대화를 나눈 끝에, 결국 그 돈은 받지 않기로 하고 우리가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서로 감정 상하지 않게 관계를 정리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또 한 번 이사를 해야 했다. 보증금이 더 낮은 곳으로.

그즈음 참 감사한 일이 있었다. 동탄 주공아파트에 들어갈 때 아빠가 1,000만 원을 보태주셨는데, 사실 그것은 아빠에게 빌린 돈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을 전혀 모르고 계시던 아빠가 갑자기 연락을 주셨다. “너희가 형제들을 위해 수고한 것도 많고, 너희도 힘든 시기니까 그 돈은 그냥 가지라”고 하시며 그 돈을 선물처럼 주셨다.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병점 주공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동탄보다 집도 작고 동네 분위기도 한층 더 열악한 곳이었다. 원룸으로 가지 않은 것만도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기 한 명에, 네 살, 일곱 살 아이까지 돌보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기도할 힘조차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복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무기력과 잘못된 믿음이 점점 틈타고 있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계획도 없으신가 보다. 나는 그냥 아기만 키우다, 힘든 개척교회 사모로 살다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걸까…”

거의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그 봉투를 들고 서서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내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남편을 통해 내 무기력함을 지적하기 시작하셨다.

“당신, 요즘 너무 무기력한 것 같아. 왜 그래?”

“나? 그냥 늘 똑같은데…”

“아니야. 이러다간 안 될 것 같아. 당신, 이제 일하러 나가야 할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아이가 셋인데, 희원이는 이제 돌이야. 내가 어떻게 일을 해?”

“그래도 해야 돼. 안 그러면 진짜 사람이 이상해질 거 같애.”

 

 남편은 당시 교육전문회사 E에 다니던 철수네 회사에 들어가보라고 권했다. 원래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마땅한 목적도 없고 국립은 대부분 지방이었기에 그 길은 접고,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엔 반대했지만, 나 역시 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일하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입사는 어렵지 않았다. 근처에 사시던 J권사님께 일정 사례비를 드리고 집안일을 부탁드렸고, 남편이 교회 일 외에는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섰다.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늘 사역만 하던 남편이 과연 갓 돌 지난 희원이까지 잘 돌볼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일은 한다고 해서 버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일단 이 이일이 아이들을 과외하는 일이다 보니 내가 하는 것만큼 돈이 들어오는데, 난 교회 예배도 다 참석은 해야되는 상황이다보니 가장 수업이 많은 시간인 저녁시간 중에서도 수요일, 금요일빼야 되고, 주말도 빼야 되고 그렇게 하다보니 수업을 많이 맡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아주 늦은 시간까지는 수업을 할 수도 없었다. J권사님께 사례비도 드려야 하고, 일한다고 여러 지출을 쓰다보면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은게 뻔하였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상황이 그대로 펼쳐졌다. 돈은 남는 것도 없이 일만 많이 늘어난 상황이 되었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도와주긴했지만, 역시 남편은 사역을 뒷전에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희원이를 아기띠에 메고 교회로 출근했고, 덕분에 교회에서는 우리집 때문에 이런 저런 모양으로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TT

 

 

난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다. 이렇게 남는 거 없는 장사를..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진단이 맞았다일을 하면서 교회 밖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내 영은 오히려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감도 찾게 되었다가르치는 일에 내가 은사가 있구나 싶었다. 나를 만난 학생들은 다 나를 좋아하고 잘 따랐다. 좋은 상사도 만났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일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즈음 근식이가 A형 간염으로 한창 아플 때였는데 나 역시 너무 무리하다 A형 간염에 걸렸다. 그런데 워낙 근식이쪽에서 크게 아파 버려서 나 아픈 것은 친정에 이야기 할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 셋을 두고 엄마는 아플수도 없었다..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금방 낫게 해주셨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병조차도 하나님께서 내게 속도를 줄이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은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 넷째 가희가 생겼고 곧 입덧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남편 역시 많이 지쳐 있었고, 이젠 그만두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세종으로 이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