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세종시 : 새로운 시작

2025년 5월 12일 · 김지혜


세종시: 새로운 시작

2014년 12월, 우리 가족은 세종시로 이사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살아보는 30평대 아파트였다. 새 아파트의 깔끔함도 좋았지만, 나를 가장 매료시킨 건 주변 환경과 맑은 공기였다. 목포에서 살다 경기도로 올라왔을 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공기였다. 하지만 세종시는 달랐다. 원래 시골이었던 지역을 개발한 덕분인지 공기가 유난히 청정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마치 펜션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종시는 세심하게 설계된 도시였다. 호수공원과 국립도서관이 가까웠고, 각 동마다 복합문화센터가 있어 행정 업무, 도서관, 육아지원센터가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돈 들여 어딜 갈 필요가 없었다. 잘 정비된 공원과 자연환경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도로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자전거 타기에 좋았고, 행정수도로 조성된 덕에 유해 시설도 거의 없었다. 아이들 초등학교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어 편리함을 더했다. 병점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려고 해도 주로 사립이어서 정부 지원비 외에도 늘 추가비용이 20만원 이상은 들었었다. 그런데 이곳의 유치원은 대부분 국립 단설유치원이었다. 무료였고, 특별활동비도 정말 저렴했다. 건물들도 새 건물에, 초등학교 정도 규모의 크기였다. 육아하기에는 정말 최고의 환경이었다.


은진이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 기쁨이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둘 다 새 환경에 잘 적응했다. 나는 기쁨이를 데려다주며 만난 친구 엄마들과 친해졌고, 종종 교제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서로에 대한 경계가 많지 않았다. 충청도 특유의 정 때문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처음보면 인사를 했고, 쉽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마음을 참 따뜻하게 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네가 파지 않은 우물을 얻고, 네가 짓지 않은 성읍에서 살게 된다”는 성경 말씀이 꼭 내 상황 같아 감사했다. 가진 자산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삶의 환경이 놀랍도록 달라졌다.


교회 개척의 비전

세종으로 내려오기 전, 우리는 이 이사를 놓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도하던 중, 몇몇 지체들은 우리가 세종으로 가는 이유 중 하나가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함이라는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에 도착한 후에도 그 비전을 품고 늘 기도했다.

세종으로 간 건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다. J장로님 가정, S자매 가정, H집사님 가정, 그리고 몇몇 여자 청년들, 근식이와 언니까지 함께였다. 이 여정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시작된 동행이었다.


언니의 이야기

언니가 세종으로 온 건 사실 우리를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세종시라는 좋은 곳을 발견하고 성도들에게 공유했을 때, 언니는 그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언니는 그때 새부대 교회를 떠나고 싶어 했다. 병점에서의 오랜 삶에 지쳤고, 다른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원래 W교회에 다녔던 언니는 그곳에서 우리를 이상하게 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합류하게 되었고, 훈련을 받게 되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주님 앞에서 잘 훈련받고 복을 받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다.

언니는 개척 초기부터 많은 수고를 했다. 초반에는 누가 교회식사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 교회 식사를 도맡아 준비하기도 했고, 청년 자매 한 명을 데리고 살기도 했다. 필리핀 선교를 갈때, 선교재정이 필요했는데, 주님께 감동을 받아 사업 자금으로 준비한 돈을 헌금하기도 했다. 몇년동안 나름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려 노력했다. 언니는 W교회 시절부터 남편을 통해 받은 은혜가 많아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섬기려고 했다. 언니에게 남편은 제부라기 보다는 존경하는 스승 목사님이었다.

 

하나님이 언니에게 주신 약속은 결혼이었다. 결혼이 풀리면 다른 모든 것도 풀린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듯했다. 특히 세종으로 내려가기 1년 전부터 청년들 사이에서 결혼이 줄줄이 이루어지자, 언니에게는 큰 시험이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교회에서 내 유업은 없는 걸까?” 그런 마음이 자꾸 들었던 것 같다. 그걸 누구한테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니 힘들 때마나에게 그 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여러번 반복되다 보니 나는 솔직히 언니 이야기를 듣기가 힘들어졌다. '하나님이 풀어주시지 않는 걸 내가 어쩌란 말인가? 언니는 내 어려움은 안 보이는 걸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나 역시 개인적인 문제로 너무 스트레스 받아있는 상황에서 또 마음이 힘든 이야기를 하니 너무 화가 나서 부모님도 함께 계신 상황에서 언니한테 뭐라고 하면서 울면서 대판 싸웠다. (우리집은 약간 장유유서적인 질서가 강해서 언니한테 이렇게 덤빈 적은 거의 처음이었던 거 같다. 언니가 볼때는 아니었을수도 있지만, 내 기억엔 ㅋ)

 

그 사건은 우리가 세종으로 가자고 결정하기 거의 한주, 또는 며칠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래서 세종을 간다고 결정했을때, 나는 언니와도 좀 거리를 둘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니 역시 그 즈음에는 병점을 떠나고 싶어했다. (언니 말로는 주변에 브닌나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고 한다.) 언니는 우리가 세종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 역시 병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세종시가 집값도 싸고 환경도 좋다고 하니 그곳으로 가자, 결혼한 청년들이 많은 병점을 떠나자, 목사님 가정과는 좀 떨어진 곳에 별도로 집을 얻고 나중에 교회와도 자연스럽게 분리되자?이런 생각으로 혼자 집을 구했다.


뜻밖의 재회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사 직후에야 알게 되었다. 언니도 같이 세종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은. 세종으로 가면 언니와 거리를 둘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같은 지역으로 간다니...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아 ~정말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그냥 묵과하지 않으시는구나..'눈치를 챈 나는 거의 바로 회개했다. 그리고 이사를 가서 깜짝 놀랐다.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각자 아파트를 구했는데, 우리는 같은 아파트, 그것도 같은 라인의 집은 구한게 아닌가? . 언니는 1층, 나는 11층. 언니도 깜짝 놀랐다. 언니 역시 우리와 좀 떨어진 곳으로 가려고 일부러 다른 부동산을 통해 집을 알아봤다는데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좋아진 환경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우리는 관계가 금방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