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부대교회
김지혜 사모 간증 연재중

새부대제자교회의 개척과 이레전도사

2025년 5월 21일 · 김지혜


교회 개척 과정과 이레 전도사의 헌신

새부대 제자교회 개척 과정에는 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다. 은정 권사님은 매주 내려와 인테리어를 관리하며 섬겼고, 본교회 성도들은 헌금으로 교회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힘을 보탰다. 세종의 청년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교회 설립을 도왔다.

 

그중에서도 이레 전도사는 특별한 헌신을 감당했다. 교회 인테리어에 대한 감동은 주로 이레 전도사에게 왔으며, 그는 자신의 원룸 보증금(우리 집 보증금으로 있던 돈)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생긴 그의 전 재산을 거의 드렸다. 초기에 그의 헌신은 큰 믿음과 열정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동기에 의문이 생겼다. 과연 그는 순수한 감동으로 헌신한 것인지, 아니면 이 교회가 자신의 사역지라는 기대를 품고 그렇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이레 전도사의 사역과 갈등

당시 이레 전도사는 대전 침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사역했고, 이전에는 병점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그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힘이 강했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병점에서 주로 그에게 맡겨진 사역은 주로 인도하심의 막바지에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였다. (막바지에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잘 순종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다.) 목사님의 말도 잘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이레 전도사에게 넘어가곤 했다. 이레 전도사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역자들은 몇 번 권면하다 말 것을 -그 사람 기분 상할까봐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권면하고 설득하고, 사역하곤 했었다. 이런 사역은 열매를 잘 맺긴 했지만 이레 전도사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사역했지만, 자신에게 사역 받은 사람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 보다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상처받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이레 전도사의 인격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긴 했다. 이레 전도사는 자신이 받은 능력, 특히 자신의 감동에 많이 의존을 했고, 큰 그림을 보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급한 성향이 있었다.

 

나는 능력을 받았다고 아직 인격적으로 미숙한 동생이 사역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편에게 종종 하곤 했다. 수고를 해도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는게 탐탁치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사역 초기에는 실수가 있을 수 있다”며 이레 전도사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믿고 사역을 맡겼다. 

 

그러나 사역 과정에서 그의 부족한 인격으로 인해 여러 오해와 상처가 쌓였다. 이레 전도사는 자신이 열심히 섬겼음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점차 공동체에서 분리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며 교회 개척에 깊이 참여한 이레 전도사는 이 교회를 자신의 사역지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에게 많은 헌신을 하게 하셨으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이 교회도 자신이 맡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 그는 한 공동체를 맡길 만큼 성숙하진 않았었다. 다른 지체들에게 그런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레전도사는 자신이 목사님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지체들을 지도하려 했다. 하지만 함께 사역하던 지체들은 그와 동등한 시기에 훈련받은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섬기고 존중하며 교회를 세워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레 전도사는 다른 지체들을 충성스럽지 않다고 여겼고, 지체들은 그를 권위적으로 보았다. 드러내놓고 다투지는 않았지만, 서로 간의 반목은 느껴졌다.

 

나는 기도 중에 이레 전도사가 담임 목사처럼 사역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언젠가 그가 이 교회를 이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했다. 내가 볼때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받은 감동을 자신의 시기와 방식대로 풀려는 태도였다. 조급할 필요가 없는데 조급해하는 이레전도사의 모습이 참으로 답답했다. 


어느 날, 나는 이레 전도사에게 조언했다. “감동을 받아도 그걸 네가 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때까지 기다리며 섬겨는거야.” 하지만 당시 그는 이 권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결국, 그는 교회를 섬기면서 계속해서 지체들과 좌충우돌했다. 지체들이 그를 참아주는 것도 한계에 다달았다. 목사님이 이에 대해서 여러번 권면했지만, 그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그를 잠시 떠나게 했다. 다른 교회에서 섬기며 더 배우고 성장하고 오라는 의도였다. 남편이 볼때, 이레전도사가 제대로 훈련받은 교회은 우리 교회밖에 없으니, 좀더 눈이 넓어지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레 전도사는 이 결정을 자신을 버린 것으로 받아들였고, 상처받은 마음을 부모님께 털어놓은 듯했다. 부모님께서는 나름 아들의 길을 열어준다고 자신이 다니던 개척 교회의 목사님께 말씀을 드려서 이레전도사가 그곳에서 사역할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한숨이 나왔다. 또 부모님의 그늘로 들어갔구나. 우리의 의도는 더 넓은 곳에 가서 배워오라는 거였는데, 더 좁은 곳으로 갔구나...부모님은 왜 개입하셨을까? 그냥 혼자 힘들게 두면, 잘못에 대해 회개하거나 새로운 환경이 열렸을 것인데....(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틀어졌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회개하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배우는 대신, 또 다른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이레 전도사는 본격적으로 연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나로서 그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척 초기에 언니를 위한 중보를 많이 했다면 이제는 이레 전도사를 위한 중보가 간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