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내려간 지 2년째 되던 해(2016), 우리 가정에 또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는 철수를 통해 시작되었다.
그 무렵, 병점에 있던 철수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인생의 세 가지 중요한 문제를 다뤄주시겠다는 음성을 들었다.
첫 번째는 결혼, 두 번째는 질병, 세 번째는 영적인 문제였다.
철수는 이 세 가지가 자신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세종으로 내려가라는 감동을 다른 지체를 통해 받았다. 세종으로 가는 것은 결혼 문제를 풀기 위함이라는 말씀도 들었다.
하지만 철수는 동탄에서 직장 생활을 아주 잘 하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종으로 가는 것이 많이 아까운 일이었다. 세종에도 지사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망설임이 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감동 이후 철수의 수업이 끊기기 시작했고,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철수는 17세부터 루푸스 질환으로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데 성령님을 만나고 잘 훈련이 된 후에는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훌륭히 직장 생활을 해 내고 있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단지 이정도로 버티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어 해결해주시겠다는 감동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 즈음부터 철수는 약 부작용을 겪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루푸스를 제어하기 위해 복용한 약이 몸의 다른 기관에 영향을 주고 있었고, 이를 염려한 남편은 기도 중에 약을 끊으라는 감동을 받았다.
약을 끊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철수 역시 기도하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고, 약을 끊었다. 그런데 이후 몸이 나아지기는커녕 상태가 조금씩 악화되고 있었다.
철수의 상태가 악화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제들이 철수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목사님도 함께했다. 그러던 중 철수의 상태가 갑자기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응급실로 옮겨졌다.
감동대로 순종했는데 상황은 오히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남편에게 소식을 들은 나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왜 그런 감동을 주셨을까? 철수가 죽으면 어쩌지?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당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날마다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었기에, 급히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했다. 은진이와 기쁨이도 기도를 하면 감동을 잘 받는 아이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통해 말씀해주시기를 기대하며 기도했다.
감사하게도 철수가 괜찮아질 거라는 감동을 받았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그날 밤은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한편, 남편은 응급실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의 심정처럼,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철수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나는 목회를 그만두어야겠다"는 마음과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했는데 철수가 죽을 리 없다"는 믿음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이다.
그는 철수를 향한 죽음의 영을 계속해서 대적했고, 철수의 상태는 점차 호전되었다.
결국 철수는 구급차를 타고 자연스럽게 세종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철수의 건강은 금방 회복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 지사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몇 달 만에 전국 1등을 하게 되었고, 본사에서 전국 직원들 앞에서 사례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 발표를 앞두고 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는 발표 자리에서 반드시 이 성과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철수에게 그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발표를 마치고 돌아온 철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뭔가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철수는 또다시 몸이 나빠져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철수가 응급실에 실려가자, 그가 맡고 있던 수업을 누군가 대신해야 했고,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내가 다시 세종지사에 들어가 철수의 수업을 이어받으라고 했다. (세종에 내려오기 전에도 철수 밑에서 일을 했던 터라 같은 상황이 반복된 셈이었다.)
세종에서 네 아이를 키우며 지내는 삶이 편안하고 익숙했기에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예전에 고생고생했지만, 수입은 별로 없이 세 달 만에 일을 그만둔 경험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군가는 해야 했고, 나는 원하지 않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남편에게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자신이 아이들을 보겠다고 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가희가 세 살쯤 되었고, 철수도 퇴원해 집에 있었기에 가능하겠다 싶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매 끼니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려고 애썼고,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홈스쿨처럼 돌보며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완전히 지쳐버렸다. 사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 직접겪어보면 알겠지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숨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또 일하러 가기 전에는 집안일이나 수업준비를 하다, 일하고 돌아오면 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졌다. 그렇지만 밖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풍성했다. 나는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과 상담을 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만나는 학부모나 아이들도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없었다.
세종에 있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더 생겼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집이 어질러져 있거나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스스로 치우면서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아이들을 한 달 돌보고 나서는 잔소리가 싹 사라졌다.
그 전에는 남편의 잔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나는 대꾸를 하다가 감정이 상하곤 했고, 그럴때 속으로 남편을 까다로운 직장상사라고 생각하며-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아서-그냥 "알았어" 하고 넘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잔소리 자체가 없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변화였다.
이렇게 나는 예전에 잠시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오래하지 못했다 ^^
딱 세달..이번에도 세달만에 일이 끝나버렸다.